(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가계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손쉬운 영업을 통해 돈벌이를 하는 시중은행들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자 은행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은행들은 기존 영업 관행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과 부동산금융 등의 영업에만 치중하면서 과거 소매금융에 주력하던 국민은행처럼 돼 가고 있다"며 "쉬운 영업에 안주하는 경향이 심화됐다"고 질타했다.

생산적, 혁신적 분야에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경제 전체의 성장잠재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해야 할 금융회사가 '손쉬운 영업'에 안주해 돈벌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회사는 리스크를 부담하는 대가로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담보·보증 위주 여신비중이 여전히 높고 연대보증 관행도 아직 존재한다"며 "단기수익성 측면에서 유리하겠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잠재리스크를 증대시키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4차 산업혁명 등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적 금융으로 금융시스템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하겠다고도 밝혔다.

최 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은행들이 안전한 가계대출에만 치중하는 관행을 강력히 비판하고 나서면서 은행권은 긴장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특히 저금리에도 이자 장사로 은행들이 높은 순익을 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던 터라 더욱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신한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 KEB하나금융지주, 우리은행 등이 올 상반기에 거둔 순이익만 5조8천786억 원으로 6조 원에 육박한다.

이러한 호실적은 이자 수익이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으로 대출 자산을 마음대로 늘리지 못하자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예대마진)를 벌리는 식으로 수익을 확대했다.

금융당국이 이러한 은행들의 보신주의적 여신 관행 개선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 왔지만, 은행들의 영업 행태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가운데 담보대출 비중은 2014년 말 52.0%에서 2015년 말 53.9%, 2016년 말 55.7%, 올 3월 56.2%로 지속해서 증가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비우량 차주의 신용대출 비중도 2014년 말 32.4%에서 올 1분기 27.6%로 줄었고, 전체 가계 신용대출(107조4천억 원) 가운데 중금리 대출 비중은 0.5%에 불과하다.

은행권은 이번 최 위원장의 발언으로 새로운 규제가 나오는 등 전방위적 압박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최근 고액성과급 지급 규제를 시행하는 등 금융당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다"며 "주택담보대출 영업이 더 어려워질 수 있고 건전성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도 정부의 비정규직 문제나 일자리 창출 정책 등과 맞물려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며 "앞으로 큰 변화가 있을 거 같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금융당국의 과도한 개입이 또 다른 관치를 낳을 수 있다는 불만도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시장 포화상태에서 영업 다변화와 다양한 자금 운용 방안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은 맞지만, 현재 금융환경에서 은행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가도 고려해줘야 한다"며 "민간 은행의 영업방식에까지 당국이 개입하는 건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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