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생존경쟁이 과거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에 미국과 일본 간의 반도체 경쟁을 상기시킨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현지시간) 진단했다.

실제 1980년대와 지금, 몇 가지 유사한 점이 있다면 글로벌 무역이 둔화하고 있으며, 미국에는 그때처럼 떠오르는 경쟁자에 경제적으로 밀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여기에 경쟁자는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는 점이다.

수년간 미 반도체산업협회(SIA)를 대변해왔던 앨런 울프은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는 과거엔 일본과의 경쟁에서 "실존적 위협"에 내몰렸다면 지금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의 경쟁에서는 미국이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중반 십여 개에 달했던 일본 주요 반도체업체들은 대부분 무너졌고, 유일하게 도시바 정도만이 생존했다. 하지만 도시바 역시 실적 악화에 반도체 사업부의 부분 매각을 진행 중이다.

미국은 당시 두 가지 문제를 공략했다.

우선 일본 반도체 수입을 차단하기 위해 일본 업체들이 반도체 가격을 덤핑 판매한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고소했다. 미국 정부도 외국계 반도체 수입품 중 일본 수입품의 비중을 20%로 낮춰 국내 업체들을 지원했다.

미국의 조치는 효과를 발휘했고, 이후 미국 업체들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과거 미국이 일본에 한 방식이 중국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980년대는 미국은 일본의 주요 반도체 수출시장이었지만, 당시 미국은 일본에 수출길이 막혀 있었다. 반면 지금은 중국 시장은 미국 업체들에 개방돼 있으며, 중국은 미국에 휴대전화나 전자장비 등에 사용되는 칩을 제외하고 컴퓨터 칩은 거의 수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에 수출되는 반도체도 상당 부문은 미국이 소유한 미국이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라 과거와는 상황이 판이하다.

현재 미국이 걱정하는 것은 중국의 과도한 보조금이다. 이는 반도체 시장의 과잉생산을 낳아 가격을 낮추고 업계의 수익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 업체들은 보조금 덕분에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수익 압박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미국은 당장 이러한 중국의 보조금 정책에 무역 제재로 대응할 뜻을 시사했지만, 미국 반도체 업계는 크게 호응하지 않는 분위기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연구전략을 담당했던 크레이그 문디에는 1980년대 미국의 인텔은 미래 반도체인 컴퓨터 칩에 집중해 개인용 PC 시장의 붐과 함께 성장했지만 일본 업체들은 정부의 지침에 따르고, 저기술 메모리반도체에 집중하다 도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디에는 따라서 지금 중국과의 경쟁에서는 "누구든 차세대 반도체 역량을 먼저 창출해 내면 끝이 난다"며 반도체업체들에 차세대 혁신 프로젝트인 '문샷' 등에 역량을 집중할 것을 조언했다.

그는 "중국인들은 그렇게 뒤처져 있지 않다"라며 "그들의 노력과 출발선을 고려할 때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10년 내 중국과 미국의 역량은 같아질 것 같다. 그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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