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이달 17일 출범 100일을 맞이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정책의 두 축은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이다.

지난 정부에서 내세웠던 양적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를 내세워 서민층까지 보듬을 수 있는 금융정책을 선보이겠다는 게 주된 취지다.

하지만 1천400조 원이 넘어선 가계부채를 비롯해 금융회사의 수수료 인하, 인터넷전문은행을 둘러싼 은산분리 등 산적한 금융 현안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정책으로 금융회사와 금융시장을 상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초대 금융당국 수장을 맡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포용적 금융'을 강조했다. 그의 첫 현장 행보도 금융권과 장기소액연체채권 정리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제도권 금융시스템에서 탈락한 계층을 포함할 수 있는 저소득ㆍ저신용자를 위한 금융 울타리를 제공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정책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다.

이후 금융당국은 대부업법상 법정 최고금리를 27.9%에서 24%로 인하하는 조치를 최대한 신속하게 추진해 취약계층의 금융 이용부담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연내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 26조 원을 소각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까지 참여할 경우 214만 명이 넘는 채무자의 빚이 사라지는 규모다.

정부의 고육지책을 두고 일각에선 모럴해저드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채무 원금 전액을 없애주는 전례 없는 조치에 일부 채무자들이 '버티기'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융당국은 서민을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지만, 국민의 혈세가 불성실한 채무자 상환에 사용될 수 있다는 비판은 여전했다.

문재인 정부의 '생산적 금융'을 위한 금융정책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책금융의 역할을 늘리고,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있다.

금융당국은 연내 담보나 보증 없이 아이디어 같은 무형 자산만으로 기업의 창업을 도와주는 금융시스템을 마련할 예정이다.

하반기 내 빅데이터 등 새로운 금융혁신을 통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4차 산업혁명 금융 분야 로드맵'을 구체화해 선보일 계획이다.

하지만 정작 금융권의 혁신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을 위한 제도 개선은 감감무소식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발전을 위해선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필요하지만, 연내 관련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그간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기 전까지 인터넷전문은행의 추가 인가를 검토하지 않겠다던 당국이 인허가 제도를 개선해 추가 인가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지만, 케이뱅크나 카카오뱅크 등 기존 진입자가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기 위해선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

연내 금융업권별 자본규제를 전면 재점검해 생산적인 분야로 자금 이동을 도모하겠다는 정책을 두고 금융권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앞서 최 위원장은 가계대출에 치중한 은행권의 전당포식 영업 관행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위험가중치 등 자본의 건전성 규제 산정 체계를 들여다보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금융회사와 차주가 리스크를 분담하는 비소구대출을 늘리고, 대출의 가산 금리 산정체계를 합리적으로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금리와 수수료 등 가격 변수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이전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서민 보호를 위해서라면 가격 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셈이다.

이미 수수료와 요금 인하 방침이 공식화된 카드와 보험사들의 반발도 여전하다.

현재 금융권의 관심은 이달 말 발표를 앞둔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금융정책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 2일 고강도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 발표되며 주택 구입 실수요자들의 일대 혼란이 가중된 만큼, 이번 대책이 금융권에 어떤 파급 효과를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정권 초기 포퓰리즘 식의 정책은 자칫 금융 현안을 놓칠 수 있다"며 "정부가 바라는 생산적, 포용적 금융을 금융회사도 실천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는 단계에서부터 함께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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