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필리핀 현지 은행인 이스트웨스트은행(Eastwestbank) 지분 인수전 전면에 나선다.

사실상 신한금융과 KB금융의 경쟁으로 비화한 '필리핀 혈투'에서 조 회장이 어떤 승부수를 던질지 금융권 안팎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조 회장은 다음 주 방한하는 필리핀 이스트웨스트은행 고위 관계자와 비공개 회동을 가진다.

이번 만남은 이스트웨스트은행 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입찰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 지분 매각 주체가 매수 희망자를 직접 방문하는 일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스트웨스트은행 측과 조 회장의 만남이 알려지면서 금융권 일각에선 신한금융이 이번 인수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은 이스트웨스트은행 측과 별도의 만남이 예정되지 않았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의 배경이 되고 있다.

이스트웨스트은행의 지분 20% 매각을 주관하는 골드만삭스는 지난 6월 예비 입찰을 거쳐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그리고 일본 아오조라은행을 적격 인수후보로 선정했다. 본입찰 마감은 이달 25일이다.

이스트웨스트은행은 필리핀 부동산 재벌 필인베스트그룹(FDC)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지 13위권 은행이다.

경영권이 아닌 20%에 불과한 해외 현지은행 지분 인수전에 금융권 관심이 집중된 것은 리딩뱅크 경쟁이 치열한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필리핀 진출을 두고 다시 한 번 맞붙었기 때문이다.

이를 인식한 듯 이스트웨스트은행 측은 줄곧 '한국 은행 두 곳이 예비 입찰에서 제안한 인수가는 저평가됐다'며 몸값 올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2012년 186곳에 불과했던 지점을 460개까지 늘리는 등 공격적인 네트워크 확장에 힘입어 올해 2분기 실적이 66%나 급증, 현지 중소형 은행 중 뛰어난 경쟁력을 갖췄다는 게 이스트웨스트은행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러한 배경에 힘입어 이스트웨스트은행의 주가는 연초 대비 50% 넘게 급등했다.

하지만 인수전에 참여하는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최종적으로 이스트웨스트은행 측이 원하는 수준의 인수가를 적어 낼진 미지수다. 승자의 저주를 인식해서다.

투자은행(IB) 업계는 이스트웨스트은행 측의 이번 방한 이유를 예상을 밑도는 예비 입찰 인수가에서 찾고 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이스트웨스트은행 측의 지분 매각 의지가 강한 편"이라며 "인수합병에 기반을 둬 성장한 일본 아오조라은행도 가능성 큰 인수자지만, 국내 은행에 좀 더 무게를 두고 막판 조율을 위해 방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억 명 넘는 인구를 둔 필리핀은 신한금융과 KB금융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 해외 거점 시장이다.

조 회장은 올해 3월 취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룹사 관점에서 시너지가 날 수 있는 해외 시장으로 필리핀을 언급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미얀마, 인도 등 주요 아시아 금융시장을 잇는 '아시아 금융 벨트'를 구축하는 차원에서 필리핀은 반드시 진출해야 하는 국가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신한은행이 마닐라에 지점을 개설했지만, 섬나라인 필리핀의 환경 상 추가 지점 개설이 여의치 않다는 점도 이번 인수전에 뛰어든 배경이다.

KB금융 역시 연초 이후 필리핀 시장 진출을 위한 시장 조사를 진행하며 현지 금융사 인수와 설립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왔다.

다른 금융지주보다 해외 네트워크가 부족한 데다, 국민은행이 지난 2008년 실패한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뱅크(BCC) 지분 투자 사례를 잊기 위해서라도 과감한 해외 인수합병(M&A)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는 11월 윤 회장의 연임 결정을 앞두고 있어 조심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스트웨스트은행을 무리하게 인수한다면 고가 매입 논란에, 반대로 신한금융에 뺏긴다면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어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필리핀의 인구와 경제 성장 가능성을 고려하면 신한금융과 KB금융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라며 "디지털 뱅킹이 우수한 국내 금융회사에 필리핀은 네트워크 확장을 실험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는 점에서 반드시 진출해야 하는 국가"라고 설명했다.

jsjeo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