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은행원이 지점장으로 부임한 뒤 업무상 스트레스로 중증의 우울증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던 중 결국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유족들은 망인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 등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를 놓고 양측의 법정 공방은 계속됐다. 그러나 최근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먼저 업무상 재해 관련 규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근로자는 업무로 인해 사고나 질병이 발생한 때에만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 업무상 재해란 해당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과 질병,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근로자의 고의나 자해,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은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그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발생한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

이 소송의 원심에서 법원은 "다른 지점장들에 비해 지나치게 과다한 업무를 수행했다거나, 회사로부터 지속적인 압박과 질책을 받는 등 특별히 가혹한 환경에서 근무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업무상 스트레스가 객관적으로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심화시킬 정도로 극심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업무상 스트레스와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함에 있어 '사회 평균인'을 기준으로 삼은 셈이다.

이는 과거 대법원이 "자살이 사회 평균인 입장에서 볼 때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말미암은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최근에는 대법원의 입장에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번 소송에서 대법원은 "업무상 스트레스라는 객관적 요인 외에 이를 받아들이는 망인의 내성적 성격 등 개인의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업무 스트레스와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면서 해당 근로자의 개인적 특성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해 결국 원심의 파기환송을 결정한 것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데 있어 '사회 평균인'을 기준으로 한 기존의 입장과는 달리 당사자의 개인적 특성까지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전원합의체에 의해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 것은 아닌 만큼 향후에도 '업무상 재해'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을 계속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 충정 박상진 변호사)

jwon@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