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압구정동 미꾸라지'(윤강로 씨), '목포 세발낙지'(장기철 씨), '알바트로스'(성필규 씨). 선물·옵션 투자로 많게는 천억원대의 수익을 올리며 유명해진 개인 투자자들이다.

파생상품시장이 위축되며 이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코스피200 선물 투자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개인 투자자가 있다. 경기도 판교에서 활동하는 'K 회장'이다.

K 회장은 그러나 한국거래소의 '허수성 호가' 규제로 시장을 떠날 위기에 처했다.

거래소는 최근 K 회장이 시가와 동떨어진 호가를 대량으로 제출한 후 취소해 시세에 부당한 영향을 미친다며 '수탁 거부' 경고를 내렸다. K 회장은 코스피200 선물은 코스피200지수와 연동돼 있어 개인이 시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능하며 선물 거래의 특성상 주문 취소가 잦을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거래소가 시장에 미칠 부당한 영향보다는 전산비용을 염려해 허수성 호가를 규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자가 경기도 판교에 있는 K 회장의 개인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지난 28일 오후 5시경. K 회장은 기자에게 선물거래 화면을 공개했다. K 회장의 그 날 수익은 9억원. 선물거래 증거금 평가액은 112억원이었다.

K 회장은 1998년 3천만원의 자본금으로 코스피200 선물 투자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선물회사를 경영한 경험을 살렸다.

그가 선물 투자를 통해 번 돈으로 강남역에 빌딩을 사들이자 2009년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나왔다. 수익의 출처를 밝히라는 것이었다. K 회장의 투자자금을 수탁하던 증권사는 그의 요청에 따라 수익 세부내용을 서류화했다. 이 증권사 관계자는 "당시 총 수익 규모가 1천억원대였다"고 귀띔했다.

K 회장은 "그 후로도 투자를 계속했으니 더 늘었을 것"이라며 "돈을 벌 때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2013년 선물 투자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물 투자의 매력을 잊지 못하고 지난해 10월 돌아왔다.

다시 활발하게 선물 투자를 하던 K 회장은 최근 파생상품시장을 떠날 위기에 처했다. 거래소가 허수성 호가를 이유로 경고 조치를 내리 것이다.

허수성 호가란 거래 성립 확률이 희박한 호가를 대량으로 제출한 후 취소해 시세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말한다. 거래소 시장감시규정 제4조 제1항 제5호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선물시장의 허수성 호가 적출 기준은 ▲거래 규모가 전체 거래량의 2% 이상이고 ▲시가에서 10틱(tick) 이상 높거나 낮은 호가를 낸 후 ▲호가의 정정·취소 관여율이 전체 정정·취소 관여율의 2% 이상인 경우인 것으로 전해졌다.

K 회장은 야간선물시장에서 여러 번 이 기준을 넘어섰다. 야간선물시장은 주간선물시장보다 거래량이 적어 '큰손'인 K 회장은 기준을 넘어설 확률이 높았다. 이미 두 차례 경고를 받아 한 차례 더 경고를 받으면 선물 투자를 더는 할 수 없다. 증권사는 규정에 따라 K 회장에게 수탁 거부를 통고해야 하고, 다른 증권사도 K 회장의 투자자금을 받을 수 없다.

K 회장은 거래소가 과잉 규제로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허수성 호가로 시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코스닥시장에서도 특히 작은 종목이나 가능하지 코스피200에 연동되는 주가지수 선물시장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주가지수 선물을 코스피200지수와 괴리되게 움직이도록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래소 주장대로 시세와 동떨어진 주문을 내도 다른 투자자의 거래창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시세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백번 양보해서 거래량이 적은 야간선물시장에서 허수성 호가로 시세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주간시장에서는 야간선물시장의 종가와 관계없이 시가가 형성되기 때문에 그런 행위로 이득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허수성 호가 규제가 파생상품시장의 특성을 무시한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파생상품시장은 주문의 정정이나 취소가 주식시장보다 훨씬 잦을 수밖에 없는데 이를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K 회장은 "'큰손'들은 한 호가에 한꺼번에 주문을 내는 경우가 없다"며 "여러 호가에 걸쳐 분할 매수하거나 분할 매도해야 투자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위험을 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또 "선물투자는 초단기 매매로 시세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주문을 자주 정정하거나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K 회장은 거래소 규제로 증권사로부터 수탁 거부를 당할 때를 대비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거래소가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할 경우 소송에 나서기 위해 법적인 검토를 마쳤다"고 말했다.

거래소가 전산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해 허수성 호가를 규제한다는 진단도 나왔다. 증권사는 거래소 규제로 수익성이 줄게 생겼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대량 주문을 넣었다가 취소하면 거래소 입장에서는 전산비용만 늘고 수수료 수익은 올리지 못한다"며 "주가지수 선물의 시세를 조종하는 행위는 사실상 불가능한데 거래소는 수익성 때문에 허수성 호가가 시세에 영향을 미친다며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K 회장이 증권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만 1년에 10억원에 육박한다"며 "거래소의 기준을 알 수 없는 규제로 증권사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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