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홍경표 기자 =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옮긴 지 반년이 넘게 지났지만, 운용이 본 궤도에 올라서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기 전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손실로 기금본부가 홍역을 치르고,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CIO) 동시 공백으로 비상운용체계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전주 이전 전후로 팀장 등 중견 선임 운용역들이 무더기로 퇴사한 이후 빈자리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서 기금본부 '허리'가 부실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 전주 이전 이후 바람 잘 날 없는 기금본부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문형표 전 국민연금 이사장이 최순실 사태로 구속된 후, 리더십 부재 속에서 기금본부는 올해 2월 말 서울 국민연금 강남사옥에서 전주로의 이전을 완료했다.

국민연금공단 본사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에 따라 2015년 6월 전주로 이미 내려갔으나, 기금본부는 공사화 논란에 전주 이전이 늦어졌다.

기금본부가 전주로 내려가면 금융중심지인 서울과의 거리로 효율성과 전문성이 떨어져 공사화해 서울에 남겨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지방 균형 발전 논리를 이기지 못했다.

이사장 공백 속에서도 기금본부는 큰 문제 없이 운영되는 듯했지만 올해 4월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손실 이슈가 불거지면서 혼란을 겪었다.

산업은행, 금융당국과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계속해서 발생했고, 국민연금은 결국 대우조선 사채권자 집회 직전에서야 투자위원회를 열어 부랴부랴 채무조정안을 수용해 리더십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국민연금은 대규모 실장 인사로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했으나, 해외 대체실장이 경력 기재 오류로 한 달 만에 임용이 취소되고 강면욱 국민연금 CIO가 사의를 표명하는 일이 발생했다.

올해 상반기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서 21%가 넘는 수익률을 내는 등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만, 하반기 미국의 금리 인상과 북한 이슈 등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어 해외증권실장이 CIO 대행을 하는 비상운용체계로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온전히 지키기 힘들 것으로 분석된다.

◇ 전주 이전으로 핵심 운용역 줄 이탈 가속화

60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기금을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베테랑 운용역이 필수적이나, 기금본부 전주 이전으로 인재들이 대규모로 기금본부를 등지기 시작했다.

지난해와 올해 2월까지 기금본부에서 퇴직 및 퇴직 의사를 밝힌 직원은 총 41명이었는데, 이는 2015년 퇴사 인원인 10명의 4배가 넘는다.

특히 경력이 11년 이상인 팀장급 선임 운용역과 7년 차 이상의 책임 운용역 등의 이탈이 두드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1965~1974년생이 주로 퇴사해 기금본부 내부에서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주식운용실 리서치팀장에 정보기술(IT) 애널리스트와 삼성전자 엔지니어 경력이 있는 1977년생 운용역이 선임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연봉 인상과 인프라 확충 등으로 인재를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운용역들에게 지리적 장벽은 여전히 높다.

국민연금은 올해 상반기 전주 이전 이후 첫 채용에서 30여 명의 운용역을 뽑으려고 했으나, 지원자 모집단의 역량이 부족하다 보니 15명밖에 뽑지 못했다.

기금본부는 부족한 인원을 채우기 위해 1차 모집이 끝나고 바로 운용역 2차 모집에 나섰지만, 이사장과 CIO 공백에 이 또한 연기됐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기금본부에서 중견 인력들이 빠져나가 허리가 없는 비정상적 구조가 됐다"며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기금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운용해야 하는데 인재들이 계속해서 나가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kp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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