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정책을 두고 은행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 산업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야 한다는 압박이 은행에 집중되면서 예상치 못한 인건비 증액은 물론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ㆍ우리ㆍ신한ㆍ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올해 하반기 채용규모는 1천700명에 달한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채용규모의 두 배 수준인 500명을 하반기에 채용한다.

이미 반기 200명을 채용한 우리은행은 하반기에 인턴 등을 포함해 500명을 추가 채용한다. 이 역시 지난해 두 배 수준이다.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도 지난해보다 채용규모를 늘려 올해 하반기에만 각각 450명과 250명 채용한다.

하지만 채용규모를 눈에 띄게 늘린 곳은 은행권뿐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한국투자증권이 예년 수준인 100명을 채용한다. NH투자증권도 3년 만에 공채에 나섰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보험과 카드업계도 하반기 채용을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비은행 업권은 통상 채용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이직이 잦은 탓에 대부분 연봉 계약직의 경력 채용이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13일 열리는 금융권 공동 취업박람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처음으로 열린 금융권 공동 취업박람회의 취지는 금융개혁이었다. 중소ㆍ벤처기업의 채용을 돕고자 은행이 추천한 260개 기업이 인재 채용을 위해 참여했고, 4차 산업혁명 등 금융 산업에 새롭게 생성된 일자리도 소개했다.

하지만 '청년 희망 실현'이란 수식어가 붙은 올해는 금융권 취업 자체가 목적이 됐다.

이날 은행은 물론 증권, 보험, 카드 등 52개 금융회사가 참여해 개별 부스를 만들어 자사 채용 시스템을 설명한다.

특히 IBK기업은행과 NH농협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KB국민은행은 블라인드 심사를 통한 현장면접을 한다. 현장면접을 하반기 채용으로 연결짓는 업권은 은행뿐이다.

특히 올해 취업박람회를 준비하는 은행권 자세는 남달랐다. 대통령 또는 일자리수석 등 청와대 인사가 행사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서다.

이날 행사에는 시중 은행장 대다수가 얼굴을 비친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 5개 금융협회장, 그리고 금융회사 사장단이 공동으로 청년 신규채용 규모 확대를 위한 협약식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인사 담당 부행장은 "채용 계획은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용이 수반되는 일이라 긴 시각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가 일자리위원회까지 발족해 직접 채용을 챙기고 있어 은행권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은행 신입 채용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다.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고 인터넷 전문은행이 등장하는 등 지점 축소가 은행권의 가장 큰 과제가 된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인력 채용 확대는 금융 산업의 변화에 역행하는 일이란 판단에서다.

특히 지점 창구에서 일하는 준 정규직 행원들의 불만은 더욱 거세다. 신입 증원보단 준 정규직의 처우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증권사 금융업 연구원은 "예전보다 IT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많이 뽑고 있지만, 현재 은행 산업의 흐름과 채용 확대가 배치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진입규제를 낮춰 시장 플레이어를 확대해 신규채용을 늘려야지 기존 참여자에게 일자리를 늘리라고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그간 가계대출에 의존해온 영업 관행에 제동이 걸린 것과 인력 확대에 따른 비용은 은행의 수익성에 장기적으로 마이너스 요인"이라며 "지점 축소와 인력 구조 효율화를 위해선 추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일회성 비용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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