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이 오찬간담회에서 공통적인 고민을 드러냈다.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은 올해 이일형·고승범·조동철·신인석 위원 순으로 총 네 차례의 금통위원 오찬간담회 강연을 개최했다.

한 한은 관계자는 "네 금통위원의 발표가 제각기 주제는 다른 것 같지만 테일러준칙에 반영되는 요인을 중심으로 같은 고민을 담고 있다"며 "잠재성장률 하락과 통화정책 효과의 약화, 가계부채 안정과 구조개혁 필요성, 중립금리 하락 등을 두루 살피고 있는 셈"이라고 언급했다.

향후 통화정책 여건이 변화할 경우 첫 금리인상을 결정할 시점을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문제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금통위원 발언을 받아들이는 금융시장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기준금리 방향에 대한 시장참가자의 기대가 달라지면서 금통위원의 발언도 다른 시그널로 받아들인 셈이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중립금리 하락과 기준금리 수준이 낮다는 신인석 위원의 발언은 금통위 의사록과 비교할 때 눈에 띄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면서도 "다만, 기준금리 인상이 어렵다고 봤던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중립금리보다 낮은 기준금리에 대한 금통위원의 언급이 금리인상 시그널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인석 위원 "실질중립금리 하락에도 기준금리 충분히 낮다"

신인석 금통위원은 지난 25일 오찬간담회에서 실질중립금리가 하락하고 있으며, 하락한 중립금리보다 기준금리가 낮은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전세계 통화정책의 틀로 거론되는 '테일러 준칙'에 적용되는 실질중립금리가 종전의 2%보다 하락했다며 주된 이유로 선진국의 위기 후 조정에 따른 소비, 투자 감소,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소비성향 하락 등을 꼽았다.

신위원은 "실질중립금리의 불확실성 문제가 최근 통화정책 논쟁의 핵심에 있지만 선진국과 우리나라 실질중립금리가 하락했다는 주장을 지지한다"며 "비록 중립금리가 하락했지만 현재 기준금리는 충분히 낮아 중립금리를 하회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신 위원은 "가계소비 성향 하락이 5년 이상 지속됐고, 2015년 이후 소형 아파트 주도의 가격 상승으로 가계소비성향 하락 조정의 완료를 조심스레 기대할 시점"이라며 "최근 새로이 등장한 지정학적 위험 요인들이 경제 흐름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신 위원의 낮은 기준금리 발언은 즉각 채권시장에서 금리인상 시그널로 인식됐다.

미국 연말 금리인상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에 시선이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낮은 금리수준에 대한 조정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고승범 위원 "완화적 정책 필요…가계부채 안정 여부 관건"

고승범 위원은 지난 5월 오찬간담회에서 가계부채 안정 여부가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고려요인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고 위원은 "경기 상방리스크가 존재하지만 지난해 6월 금리인하 당시보다 가계부채를 좀 더 주의깊게 보고있다"며 "하반기에는 정부 정책 효과 등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완화적 통화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며, 장기적인 잠재성장률 제고가 구조개혁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위원은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을 통해 장기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며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구조개혁 추진을 보완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는 "자본유출입은 앞으로 여러 변수를 모니터링하며 판단할 수 밖에 없다"며 "지정학적 불안 등 리스크요인이 지속되고 있어 모니터링이 필요하며, 높은 대외신인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동철 위원 "통화정책, 성장률 하락추세 완화 어렵다"

조동철 위원은 지난 3월 간담회에서 "통화정책이 성장률 하락추세를 반전, 완화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 경제학자의 생각"이라며 통화정책의 한계를 짚었다.

그는 "통화당국이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중립금리는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며 "기준금리를 평가할 때 중립금리(자연금리) 하락 추세를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장률 하락이 금리에 영향을 미치고, 기준금리를 조절하는 통화정책에도 직접적인 함의를 갖는다는 설명이다.

조 위원은 "여전히 통화정책은 단기적으로 실물 경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장기적으로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급등락을 제어함으로써 경제주체들에 거시경제 관련 불확실성을 축소시킨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지난 6월에 열린 한은금요강좌 700회 강연에서도 소비회복 지연에 따른 성장률 하락을 지적했으며, 지난 7일 열린 '아시아 지속성장' 국제콘퍼런스에서도 "1990년대 이후 자연이자율이 하락하고 있다"며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으려면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내세웠다.

◇이일형 위원 "고령화 대비한 저축 증가에 통화정책 경로 약화"

이일형 위원은 지난 2월 금통위원 오찬간담회 강연에서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한 저축 증가가 소비를 위축시켜 통화정책을 완화해도 정상일 때보다 효과가 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소비주체들의 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기적으로는 소득으로 연결되지 않는 부채가 금융안정의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이 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확대된 금융부채는 소득불균형과 더불어 소비를 위축하고 있다"며 "구조적 해결책이 동반되지 않은 부채 증가는 금융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미국 경제 호전과 금리인상은 우리나라 수출을 확대시키고,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동시에 시장금리 상승을 부추기고, 금리 수익률 곡선을 가파르게 만들어 금융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

syju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