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9월 회의에서 보유채권을 줄여나가는 대차대조표 정상화 프로그램을 시장의 예상대로 10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연준은 2015년 12월부터 4차례에 걸친 정책금리 인상(현재 1.0~1.25%)으로 유사시에 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탄을 확보한 만큼 지난 6월에 제시한 시행일정을 지연해 정책 신뢰도를 떨어트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책금리 목표 범위도 시장 예상에 부합되게 현 수준을 유지했는데 경제전망 수정과 정책금리 예상(Dot Plot)이 흥미를 끈다.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실업률을 낮추었지만, 인플레이션 전망은 하향 조정했다. 아울러 12월 금리 인상 예상을 12명으로 유지함으로써 저인플레이션 상황에서의 금리 인상에 대한 논란에도 연내 추가 금리 인상 의지를 내비쳤다.

FOMC는 연준 법에 명시된 3대 책무인 ▲최대한의 고용 증진 ▲물가안정 ▲적정수준의 장기금리 유지에 부합되도록 통화정책을 집행한다. 이중 물가안정에 대해서는 장기 인플레이션이 통화정책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 목표를 설정해 운용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목표는 장기적으로 최대한의 고용과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데 가장 적합한 수준으로 설정되며 매년 1월 FOMC에서 이를 재확인하고 있다. 현재 목표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기준 2%이다. 한편 적정수준의 장기금리는 이러한 물가안정을 통해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이 안정화되도록 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

최대한의 고용도 물가안정과 대등한 지위를 가지는 책무이긴 하나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비통화적 요인들에 의해 주로 결정되기 때문에 고용목표를 별도로 설정해 운용하지는 않는다. 다만 FOMC 위원들은 매년 4회(3, 6, 9, 12월)에 걸쳐 발표하는 경제전망에서 실업률 전망치를 제시하고 있으며 최근 장기 전망치의 중심범위는 4.5%-4.8%이고 중간값은 4.6%이다. 이는 소위 자연 실업률(또는 NAIRU)로 활용되는 수치이기도 하다.

 





FOMC는 이런 배경에서 인플레이션이 2% 목표 수준을 밑돌고 실제 실업률이 자연 실업률 4.6% 수준을 상회하는 경우에는 금리를 인하하고 반대의 상황에서는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경기를 조절해 양대 책무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러한 통화정책 수행은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역관계를 보여주는 이론인 필립스커브가 제대로 작동되어 고용 증진과 물가안정의 양대 책무가 상호 보완적 관계를 맺는 경제 상황 하에서는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책무가 상호 보완적이지 않은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 FOMC가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올해 들어 노동시장의 개선추세가 지속하면서 실업률이 자연 실업률을 하회하는 4.2%까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고 PCE물가상승률은 목표치를 훨씬 밑도는 1.4% 수준까지 하락하면서 FOMC의 정책 결정을 어렵게 하는 퍼즐에 직면하게 됐다.

시장에서도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크게 보면 고용 확대가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한 분석이 한 축이고 다른 한 축에서는 저인플레이션의 구조적 요인을 분석하고 있다.

최근 노동시장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세가 부진한 이유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노동생산성 증가세 둔화 ▲인구 고령화 ▲노동조합의 약화 등이 제시되고 있다. 한편 임금상승 둔화 요인 이외에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요인으로는 ▲IT 기술 진보 ▲글로벌화 진전 ▲인터넷 기반 경제의 확산 ▲거대 다국적 기업의 가격 파괴 ▲글로벌 저물가 지속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기대 약화 등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분석들이 시사하는 대로 그동안 통화정책의 주춧돌이 되어 온 필립스커브의 실업과 인플레이션간 전통적인 관계가 구조적으로 왜곡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통화정책 결정의 중대한 시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 여부에 대해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이 더 우세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들이 지속적으로 대두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매우 낮은 상태에서 조기에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에는 해소하는 데 장기간이 소요되는 디플레이션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리 인상 이후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지속해서 목표 수준을 하회할 경우에는 연준의 정책 신뢰도에 상당한 상처를 주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눈에 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금리 인상 결정이 너무 지연되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급격히 상승할 경우에는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상반된 주장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최근의 저인플레이션 현상은 구조적인 것이기 때문에 장기간 저금리 유지로 인한 과도한 부채 발생 및 금융불안 야기 가능성을 고려하여 인플레이션과 관계없이 금리 정상화를 지속하여야 한다는 적극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FOMC가 9월 회의에서 인플레이션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도 경제성장률 및 실업률 개선 전망을 토대로 12월 금리 인상 예상을 유지한 것은 표면적으로 들어내지는 않았지만 최근 저인플레이션의 일부는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소 인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뜨겁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 반영된 올해 12월 정책금리 25bp 인상 가능성은 9월초 30%대에서 9월 FOMC 이후에는 70%대로 급상승했다. 10월 초에는 임금지표 호조로 장중 한때 98%대까지 치솟는 등 12월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하는 분위기를 나타내기도 했으나 9월 소비자물가 지표가 부진하면서 80% 초반대로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FOMC가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인지 아니면 인플레이션 데이터에 귀를 기울이면서 두고 볼 것인지 아울러 내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다. 옐렌 의장의 임기가 내년 초 만료되는 점도 이러한 정책 결정에 대한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자산운용 측면에서는 역사적 고점을 연일 경신하고 있는 주식시장과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변동성을 고려할 때 올해 말부터 내년으로 이어지는 미 연준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행보가 자산가격에 미칠 영향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전례가 없는 사태를 맞아 제로금리 및 양적 완화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 왔고 이제 경험해 보지 못한 그 길을 되돌아가고 있다. 신중한 정책 결정이 요구된다. 하지만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일도 중요하다. 참으로 만만치 않은 이 퍼즐을 연준이 어떻게 풀어나갈지 묘수가 필요한 때이다.(홍택기 글로벌투자전략연구소장 / 前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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