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강세로 신흥시장 자산가치 급변 예상



(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번 주 테이퍼링(자산매입 규모축소) 계획을 공식화하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뿐 아니라 스위스부터 아프리카까지 주변지역에도 상당한 여파가 미칠 것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WSJ은 "ECB가 자산매입 규모를 줄이기 시작하면 투자자들은 통화정책이 ECB의 통화정책과 가장 밀접하게 연동된 국가의 자산을 사고팔 것"이라며 "ECB의 테이퍼링은 시장에 연쇄반응을 가져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라보뱅크의 피오트르 마티스 신흥시장 외환 전략가는 "이들 시장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유로화 강세"라며 "ECB의 테이퍼링으로 유로화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WSJ에 따르면 일부 아프리카 국가와 유로존에 접한 유럽 국가의 중앙은행은 유로화의 영향을 크게 받거나 자신들의 통화를 유로화에 연동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ECB의 정책과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미국과 캐나다 등이 기준금리를 올릴 때도 ECB와 마찬가지로 저금리를 유지해왔다.

특히 동유럽 지역의 대부분 국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금리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헝가리는 전 세계 신흥시장 유일하게 마이너스 금리 상태다.

WSJ은 "유로존보다 경제성장률이 더 높은 국가도 기준금리 인상에는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금리를 올리면 자국 통화 가치는 유로화에 비해 강해지고 이는 자국 물품의 경쟁력이 약화하는 반면 유로존으로부터 저물가가 유입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분석했다.

스위스의 경우 지난 2008년 이후 실질 경제성장률이 약 11%대로 4%에 불과한 유로존을 크게 앞선다. 통상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금리도 올라야 하지만 스위스중앙은행(SNB)은 예금금리를 마이너스 0.75%로 고수해 ECB의 마이너스 0.45%를 밑돌게 하고 있다.

픽텟 웰스 매니지먼트의 크리스토프 도네이 거시분석 및 자산배분 총괄은 "SNB는 ECB가 움직이지 않는 한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스위스프랑화 강세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은 ECB의 테이퍼링이 이미 자산가격에 반영됐다고 보고 있지만, ECB가 긴축으로 선회하면 폴란드의 즐로티화 등 동유럽 통화 강세에 대한 베팅이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ECB가 긴축에 들어가면 유로화는 강세를 띠게 되고 이를 추종하는 다른 통화의 가치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에서는 루마니아가 ECB 테이퍼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노무라증권의 마르신 쿠조스키 신흥 유럽 이코노미스트가 분석했다.

그는 "루마니아 국채의 약 절반은 외화로 표시돼 있고 그중 대부분은 유로화"라며 "다른 절반은 루마니아 거주자가 아닌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 세계 신흥시장에서 유로화로 발행된 채권은 121개였다. 이는 유로화가 출범한 지난 1999년 이후 최대 규모다. 멕시코의 대형 석유 기업 페멕스는 지난 2월 신흥시장에서 발행된 유로화 채권 중 최대인 42억5천만유로(약 5조6천654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14개국은 유로존 외 유럽 국가보다 더 유로화와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

WSJ은 "아프리카에는 유로화에 자신들의 통화를 묶어둔 두 개의 통화동맹이 있다"며 "이들은 각자 중앙은행이 있고 ECB와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만, 유로화 가치가 변동하면 경제적으로 연쇄반응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jhjin@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