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울 채권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당국이 우악스럽게 변한 탓이다. 한국은행은 시장과 소통에 실패하면서 금리 급등을 촉발한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도 국채 장기물 수급 불균형에 따른 금리 역전 현상 등에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채권시장 등에 따르면 이주열 한은 총재 등이 최근 국정감사 등을 통해 매파성 발언을 쏟아내며 국채 수익률이 급등했다. 추석 연휴 직후 연 1.93% 였던 국채 3년물 금리는 지난 주말 기준 2.16%로 13bp나 올랐다. 국채 10년물 금리는 2.41%에서 2.53%로 12bp 올랐다. 국채 30년물은 2.40%로 거의 오르지 않아 금리 역전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2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경기회복세가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물가도 목표수준에 수렴할 것으로 확인되는 시점에 금리 인상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채권시장은 이총재의 발언 강도가 과거와 달라져 매파적인 것으로 풀이했다.

매파로 변한 이총재의 변심에 가장 크게 놀란 곳은 증권사들이다. 단기물 수급의 주도 세력인 증권사들이 서둘러 손절성 매도에 나섰지만 깊은 내상을 입고 있다. 증권사들이 대거 설정한 ELS (Equity-Linked Securities:주가연계증권)나 DLS( Derivative linked securities:파생결합증권)의 기초 자산 대부분이 중단기 채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레버리지 펀드와 구조화 채권을 헤지 하기 위한 헤지북 등도 단기물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서울 채권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수익률곡선:단기금리 급등과 금리 역전 현상이 심화된 최근 채권시장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스왑 페이와 맞물린 증권사 RP 계정은 CD금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대규모 손실을 보고 있다. 금리 급등세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시스템리스크로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단기자금시장이 증권사 RP 중심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기 때문이다.

단기물에 이어 장기물 시장도 수급이 꼬이면서 서울 채권시장 참가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27일 연 2.40%에 마감했다. 만기가 더 짧은 5년 만기 국채 금리는 같은 날 연 2.41%에 마감했다. 만기가 긴 채권의 금리가 더 낮아지는 역전현상이 심화된 결과다.

국내 보험사들이 오는 2021년부터 시행되는 국제 회계기준인 'IFRS17' 도입을 앞두고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을 맞추기 위해 장기 국채 매입에 화력을 집중한 탓이다. 투자 수요는 몰리고 있지만 장기물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다. 올해 선보인 국채 50년물 발행이 취소된 데 이어 국채30년물 공급도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장참가자들은 장단기 채권시장의 혼란상이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 같은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안의 코끼리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문제를 일컫는다. 문제를 고치기 위한 시도들이 여러번에 걸쳐 좌절로 이어지면서 무관심의 영역으로 전이된 경우다. 방안의 코끼리 같은 서울 채권시장 문제를 방치하다가 당국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당국이 채권안정펀드라는 아픈 추억을 20년만에 소환한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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