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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경욱의 세계로 향한 窓> 잊힌 아시아 외환위기 20주년
    허경욱  |  @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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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7.11.06  14: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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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 6월에 2008년 위기 이후 실행된 금융개혁 덕분에 우리 생애에 다시는 금융위기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밝힌 바 있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침체일로에 있던 세계 경제가 드디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4월 위기 이후 최초로 세계 경제전망을 상향 조정했고 올해 성장률을 3.6%로, 내년도 성장률을 3.7%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의 폭과 깊이가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가장 크고 깊었던 점을 고려하면, 9년 만에 긴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다행인 듯하다. 아울러 그동안의 통화 완화정책에 힘입어 전 세계 주요 주식시장은 연일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고, 채권도 부동산도 모두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낙관적 전망에 가려서 우리는 올해가 1997년 발발한 혹독했던 아시아 외환위기의 20주년이라는 사실을 별로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사실 지난 20년간 국제금융 질서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신흥국이 참여한 주요 20개국(G20) 국제경제 정책조율의 최고위급 포럼이 마련됐고,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 신흥국가 최초로 의장을 맡았다.

    IMF의 지분 구조는 우여곡절 끝에 획기적으로 개편돼 6%의 선진국 지분이 주로 중국과 브라질, 인도 등 신흥 개도국으로 이전됐다. 우리나라 지분도 0.77%에서 1.88%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위기 이후에만 지원하던 IMF 대출도 위기 이전에 지원을 약속하는 예방의 대출 프로그램도 만들었고, 악명 높은 IMF 구조조정 조건도 감축하거나 면제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아울러 IMF를 보완하기 위한 지역별 금융협력기구도 계속 만들어져서 아시아에서는 한·중·일과 ASEAN(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의 중앙은행 간 2천400억 불의 스와프 자금을 위기에 서로 빌려줄 수 있는 제도를 갖춰 이를 운용하기 위한 역내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도 발족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거시 건전성 정책의 하나로 단기외화 차입을 억제하는 제도를 시행했고, 현재 3천800억 불이 넘는 외환보유고는 물론 2천200억 불이 넘는 대외순자산, 그리고 30% 이하로 통제되고 있는 단기외화부채/외환보유고 비중 등 다시는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미래의 위기에서 자유로울까? 위기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금융시장은 공포와 탐욕 사이를 수시로 넘나드는 인간 심리에 영향을 받고 네덜란드의 튤립 투자 광풍처럼 순식간에 낙관이 비관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수많은 위기를 겪으며 값비싸게 배워왔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위기 이후 국제금융 질서의 개혁과 우리의 외환부문의 건전성 강화는 크게 평가받아야 마땅하지만, 이것이 미래위기를 막아준다고 보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우리는 대사증후군처럼 천천히 진행되지만 지속해서 우리의 기초체력을 갉아먹어서 막상 외부의 세균이 침입해오면 이에 대항할 면역력이 떨어지고 쓰러지게 되는 새로운 종류의 만성적 위기에 너무 둔감해진 것이 아닐까?

    우리 생애에 다시는 금융위기가 없을 것이라는 옐런 의장의 지난 6월의 낙관적 전망론은 우리가 안일함(complacency)에 빠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여기서 문득 경제 원로 한 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위기가 별 게 있나? 구조조정을 오랫동안 안 하면 오는 거지"라고 하시는 거다.

    그렇다. 우리가 과거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 각종 개혁 조치를 무성한 논의만 하고 실천에 못 옮기다가 외환위기를 겪고 반강제적으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했다. 그 덕분으로 외환위기에서 빨리 벗어난 것은 물론 2008년 세계위기 때도 드물게 플러스 성장을 하면서 위기를 여타 국가보다 쉽게 이겨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 지 벌써 20년이 된 지금, 우리 경제에는 많은 비효율이 누적돼 있다. 과거의 선진국추격형 성장모델은 더는 유용하지 않고 혁신형 성장모델로의 전환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청년실업은 높아만 가고 젊은이들은 헬 조선을 불평하면서 공시에만 매달리고 있다.

    지난 3년간의 영업 수익으로 이자 비용도 못 벌고 있는 좀비기업은 13%에 달하는데 조선 등 산업의 구조조정은 아직도 미진하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해 노령화는 가속적으로 진전되고 있는데 저출산 대책은 헛발질만 하는 것 같다.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의료ㆍ교육 등의 서비스산업 활성화 법안은 수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고, 새로운 4차 산업 혁명에 필요한 고용시장 유연성은 빈말에 머물고 있다. 다보스포럼에서도 우리의 국제경쟁력은 4년째 세계 26위에 머물러있고, 노동시장과 금융의 낙후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이렇게 나무뿌리가 허약해져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단기적인 반도체 호황에 취해서 심각한 위기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문득 조선 시대 선조 때 선비가 학질을 쫓아 보내는 글(송진문)에서 학질 귀신을 빙자해서 갈파한 경구가 생각난다.

    "대저 나무가 썩으면 날짐승이 모여들고…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자기를 친 후에 외부의 적이 치고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자신을 해친 후에 외부의 사기가 와서 해치는 법이요. 따라서 내가 그대를 찾은 것이 아니라 그대가 실로 나를 기다린 셈이오."

    그렇다. 위기의 경우 대개는 우리가 불러들이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임진왜란도, 병자호란도, 97년 외환위기도 다 그러했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10년이 돼가는 이때, 우리가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은 우리가 우리의 구조조정을 게을리하고 필요한 개혁을 늦추면 위기는 반드시 다시 온다는 엄중한 역사적 사실이다. (허경욱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 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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