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ㆍ합병(M&A)과 관련이 없을 듯하지만 근래 M&A와 관련해 주목받고 있는 법률 분야가 있다. FCPA(Foreign Corrupt Practices Act)라는 미국법으로 대표되는 부패방지법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FCPA는 해외에서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그 적용 범위가 넓어 단순히 미국 회사들뿐만 아니라 미국 회사들의 전 세계 자회사와 미국에 상장되거나 미국예탁증권(ADR) 등을 발행한 외국 기업들도 적용받는다.

나아가 주관 부처인 미국 법무부(DOJ)와 증권거래위원회(SEC)는 FCPA를 매우 광범위하게 해석해 범행의 일부라도 미국 영토에서 이루어진 경우에는 기업의 국적을 불문하고 FCPA를 적용해 오고 있다.

예컨대 미국 은행 계좌를 통하여 뇌물을 지급하는 경우 미국의 은행 전산망을 이용했다는 점을 근거로 이를 미국 영토에서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FCPA는 1977년 제정되었으나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가 최근 들어 이를 공격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최근 10여 년간 의율한 건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징벌금의 규모도 천문학적이다. 2008년 독일 기업 지멘스에게 8억달러(약 9천억원)가 부과된 것을 비롯해 2011년 JGC라는 일본 기업에는 약 2억 2천만달러(약 2천5백억원)의 징벌금이 부과됐다.

징벌금이 큰 건들이 대부분 미국이 아닌 외국 기업들에 관한 사건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 보니 외국 기업들의 견제를 위한 미국의 신보호주의가 아니냐는 비판마저 제기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M&A와 관련해서 대표적으로 문제 될 수 있는 상황은 미국 기업이나 사모펀드(PEF)가 한국 기업을 인수하고자 할 때 피인수 기업이 뇌물 제공 등의 부정부패 행위에 연루되어 있거나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영업 관행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근래 외국 기업과 PEF가 한국 기업 인수 과정에서 부정부패와 관련되는 실사를 심도 있게 실시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고, 그러한 실사에 대해 한국 기업들은 배경이나 영문도 모른 채 '도대체 왜 이런 불필요한 일을 해야 하느냐', '왜 이런 굴욕을 당해야 하느냐' 등의 불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여러 가지 심각한 위험을 내포한다.

우선 투자 이후뿐만 아니라 투자 전의 부패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승계인 책임(successor liability)을 지우는 법리 때문이다.

두 번째, 인수한 기업이 부패한 기업이라면 기업의 가치가 상당히 감소하게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뇌물에 의존하는 사업 관행을 인수 후에는 지속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업의 명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부패한 기업이라는 인상은 당장 보이지 않고 금전적으로 환산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어떤 손해보다 큰 손해가 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의 해외 M&A가 활발해 짐에 따라 한국 기업들도 부패방지법과 관련된 위험에 점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미국에서 상장되어 있거나 많은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말할 나위 없고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관심과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관련 법령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집행하는 최근 추세 때문이다. 중요성과 심각성에 비해 아직도 한국 기업들의 관련 분야에 대한 이해와 대처 수준은 매우 낮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뇌물과 같은 부정부패가 사업 수행을 위한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대응 방안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실사와 내부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시스템의 도입과 실천이다.

기업 인수 과정에서 해당 국가와 산업 및 대상 기업이 처한 상황과 사업 수행 관행 등을 면밀히 파악하고 이에 따라 위험 수준(risk-based)에 부합하는 실사를 충실히 이행하고, 인수 후에는 내부 윤리규정을 만들고 이를 임직원들에게 교육하고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부 윤리규정과 교육이 보여주기식이 겉치레가 아닌 실천이 중요하다는 점 또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법무법인 세종 류명현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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