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신입 행원 채용비리와 관련해 도덕적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표시했다.

행장 사임을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은행 이사회는 한치의 경영 공백도 있어선 안 된다며 새 행장 선임절차를 서두르고 있다.

세상 밖으로 우리은행의 채용비리가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다.이를 두고 은행 내부에선 현 행장 체재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의 내부 제보로 국감에서 채용비리가 이슈화됐다고 말을 옮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일, 상업은행 출신들이 패를 나눠 이번에는 어디 은행 출신을 떠나 특정 인물 정해 누가 행장이 돼야 한다며 서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망했던 은행들을 살려 놓고 나서 은행명도 '국민 모두의 은행', '너와 나는 남이 아닌 하나다'는 의미에서 '우리'은행으로 은행명도 바꿨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태는 여전하다.

채용비리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큰 상실감을 떠안긴 것도 모자라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은 어느 한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새 행장을 뽑겠다는 우리은행 이사회는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할 경우 정부를 대표하는 예금보험공사를 비상임 이사로 넣을지, 뺄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우리은행은 정부 지분 일부가 매각됨에 따라 민영화에 성공했다. 겉으로 보기엔 민간은행이다.

하지만 정부 지분 매각은 과점주주 매각방식으로 진행돼 여전히 최대 주주는 우리은행 지분 18.52%를 보유한 예보다.

그런데 우리은행 이사회는 정부를 대표하는 예보를 비상임 이사로 포함할지, 안 할지 고민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지난 9일 우리은행은 이사회를 열어 임추위 멤버로 예보 인사는 제외하기로 했다.

추후 이사회나 주주총회를 통해 예보의 주주권은 보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구색이거나 선심을 쓴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정부도 국민 여론이 관치에 워낙 부정적이다 보니 자신감이 없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최대 주주면서도 우리은행 이사회가 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경기에 선수로 뛰라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보라는 데도 주저하는 모습이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최근 행장 선임을 두고 벌이는 우리은행 내부의 복마전을 보고 있노라면 정부 개입은 불가피해 보인다.

국가는 세사(世事)를 다스려 어려움에 빠진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철학이 지금 우리은행에 필요할 때다. 우리은행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자생적 치유능력에 한계를 이미 드러냈고, 그 한계를 드러내는 중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마저 한 발 뒤로 물러서겠다고 하면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미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정책금융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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