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전 세계적인 안전자산 부족 현상을 고려해 한국은행이 보유한 미국 달러 표시 자산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송민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12일 '전 세계적 안전자산 부족 현상의 국제통화체제 안정성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은행 준비자산에 있어 통화 구성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송 연구위원은 "대표적인 안전자산 공급자로 미국의 위상이 약화해 달러의 가치가 추세적으로 낮아지는 것이 거대한 흐름이라면, 이에 선제로 대응하기 위해 우리나라 준비자산의 통화 구성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안전자산(safe asset)이란 어떤 경제 상황에서도 액면 가치를 유지할 수 있어 별도의 위험 분석을 필요치 않은 자산을 말한다. 만기까지 보유한다면 정해진 현금 흐름이 발생하도록 미국 정부가 보장할 것이란 시장의 신뢰가 존재하는 미국 국채가 대표적이다.

그간 안전자산을 공급하는 역할은 미국을 비롯한 소수의 선진국만 수행했다. 이 소수의 선진국 경제가 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하락하고, 신흥 경제국이 부상하면서 안전자산 부족 현상이 가시화됐다.

송 연구위원은 안전자산이 부족하면 과도한 신용팽창에 따른 금융위기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할 경우 안전자산이 그에 상승하는 프리미엄을 갖게 되고, 이렇게 되면 기존 공급자가 아니던 주체가 안전자산을 공급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신흥국 중앙은행이 서둘러 준비자산 규모를 확대하자 민간 금융회사가 자산 유동화를 통해 유사 안전자산을 만들기도 했다.

송 연구위원은 "이 과정에서 그리스 등 재정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국가가 낮은 금리가 국채를 대거 발행했다"며 "사후에 이들 자산은 안전자산이 아니었음이 드러났고, 과도한 신용팽창에 따른 금융위기 발생의 실마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전자산 부족 현상이 결과적으로 국제통화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한다고 강조했다.

수요와 공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안전자산 공급을 늘린다면 궁극적으로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우려가 고조돼 안전자산의 지위를 상실할 가능성도 있어서다.

일각에선 국제통화체제의 주도권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듯이 향후 미국을 대체하거나 보완해 안전자산 공급 부족을 해소할 새로운 발행 주체가 부상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준비자산에서 미국 달러 표시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다. 전 세계 공적 보유 외환에서 미국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 65%를 넘는다.

전 세계 평균을 웃도는 달러 보유 비중을 낮추고 준비자산의 통화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게 송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그는 "전 세계적인 안전자산 부족 현상이 실제로 국제통화체제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미국 달러가 전체 준비자산 통화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 국제통화체제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학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준비자산의 통화 구성과 관련된 위험 관리는 한국은행이 지속해서 수행하고 있지만, 안전자산 부족 현상과 국제통화체제 안전성과 관련된 최근의 연구를 참고해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준비자산의 통화 구성 조정이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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