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우리은행이 11년 만에 필기시험을 부활시키며 채용시스템의 변화를 예고하자 시중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금융권 입사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도 내년부터 은행 등 금융회사의 채용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과거의 '금융 고시'가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내년 신입 행원 공개채용 전형에 필기시험을 추가하기로 확정했다.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공채 전형에 필기시험을 포함해온 우리은행은 11년 만에 이를 재도입하는 셈이다.

이번 채용비리 사태를 계기로 인사 시스템을 쇄신하는 차원에서 채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게 필기시험 도입의 이유다.

과거 우리은행의 필기시험은 논술과 경제ㆍ금융 상식 약술, 언어와 수리영역을 포함한 인·적성 검사로 진행됐다.

지난 2006년에 치러진 필기시험에서는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국내외 사모펀드의 허와 실,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란 세 가지 주제 중 두 개를 90분 안에 작성해야 했다.

당시 금융공기업은 물론 다른 시중은행들도 비슷한 형식의 필기전형을 치렀다.

난도 있는 문제 탓에 취업준비생들은 이를 '금융 고시'라고 불렀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문화가 확산한 2008년부터 우리은행은 필기가 아닌 면접 중심으로 채용 전형을 수정했다.

2011년까지는 토론면접과 PT 면접, 역할극, 다면평가 등을 포함한 2박 3일간의 합숙면접을 진행하기도 했다.

시중은행들도 비슷했다.

'무(無) 스펙'을 강조하며 나이와 성별, 학교 등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적성과 업무에 적합한 인재를 찾겠다는 맞춤형 채용문화가 부상하자 시중은행들도 면접을 중심으로 평가 방식을 다양화했다.

현재 신한은행은 공채 전형에 필기전형이 없는 대표적인 사례다.

KEB하나은행은 필기전형이 있지만, 창의력을 평가하는 인·적성과 인성 검사가 주다.

KB국민은행과 금융공기업 성격의 IBK기업은행, 농협은행은 논술을 포함한 필기전형을 치르지만, 과거에 비해선 난도가 낮아졌다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금융권 채용비리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에 채용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하고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상태다.

이에 채용 과정의 평가를 계량화하기 위해서는 필기전형의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은행들의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인사 담당 부행장은 "결국 주관적인 평가가 반영되는 면접을 줄이고 성적을 계량화할 수 있는 필기 등의 난도를 조절해 점수 차를 둘 수밖에 없다"며 "특혜 채용은 근절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필기 비중을 높이면 참신한 인재를 요구하는 최근의 채용문화를 거스를 수 있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채용문화 변화를 지켜보는 취업준비생의 우려도 커지는 모습이다.

주요 포털의 금융회사 취업 관련 카페에는 시중은행의 필기시험이 부활하면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더라도 서울 상위권 대학 출신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푸념의 글이 포털사이트 등에 올라오고 있다.

시중은행의 논술과 상식 시험에 대비하는 사교육과 인터넷 동영상, 도서 출판이 늘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네이버 아이디 'good**'는 "부모의 스펙을 보는 금융회사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필기시험에서 대안을 찾는 것도 사회적 낭비"라며 "줄 세우기 금융 고시는 구시대 유물"이라고 지적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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