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홍경표 기자 = 문재인 정부가 역대 최대의 벤처 지원 방안을 내놓자, 시장에서는 과거 김대중 정부 당시 '닷컴 버블'이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의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 정책과 연기금 투자 확대 기대 심리만으로 코스닥이 급등하고, 벤처펀드 자금을 노리는 전문 '벤처 코디네이터'까지 등장하는 등 벌써 과열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지속 가능한 벤처 생태계 형성과 코스닥 성장이 이뤄지려면, 정부의 지원과 함께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철저한 투자 검증과 기업의 실적 개선세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총 8천600억 원에 달하는 벤처 모태펀드 사업을 시작했으며,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으로 총 30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벤처기업에 투입한다.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연기금 코스닥 투자비중을 10%까지 끌어올릴 계획도 발표했다. 벤처기업들의 코스닥 입성 허들도 낮아질 전망이다.

정부가 역대 최대 벤처 투자 방안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스닥은 급등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코스닥은 1년 3개월 만에 700선을 넘어섰고, 13일에는 사상 최대 기관 매수 속에서 하루 만에 무려 2.86% 오르며 2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스닥뿐만 아니라 모험자본, 벤처캐피탈(VC) 시장도 함께 달아오르고 있다.

정부와 연기금이 모태펀드와 혁신모험펀드, VC펀드로 돈을 쏠 준비를 하자 벤처 코디네이터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는 소문이 시장에서 파다하다.

현재의 벤처 투자 바람이 김대중 정부 당시 '벤처 버블' 초기를 닮았다는 지적도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벤처기업 창업 및 육성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예비 창업자들과 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닷컴 열풍'과 국내 초고속 인터넷 보급 등 정보기술(IT) 인프라 구축, 새롬기술·장미디어·다음 등으로 대표되는 IT 벤처기업 성장에 힘입어 '벤처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코스닥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2000년 3월 10일 2,834.4포인트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미국의 닷컴 버블이 진정되면서 코스닥을 중심으로 주가는 급락했고, 2천800선을 넘었던 코스닥은 1년도 안 돼 500선까지 무너지면서 충격을 안겨줬다. 강남 테헤란로를 가득 채웠던 벤처기업들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후 IMF 극복과 2008년 금융위기 탈출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됐고, 중소·벤처기업 생태계는 더욱 황폐해졌다.

물론, 과거 코스닥과 현재 코스닥은 기업 실적 등 펀더멘털이 달라진 만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과거 코스닥은 현재 벤처 시장과 닮아있다.

벤처 버블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지속가능한 벤처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돈이 효율적으로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검증 시스템이 선제적으로 구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성장 사다리펀드'는 2013년부터 6조1천억 원이 넘는 금액으로 조성됐지만, 지난해까지 실제 투자된 금액은 44%에 그치는 등 투자할 곳 자체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억지로 돈을 투입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연기금의 벤처·코스닥 투자도 성과가 나오면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늘릴 텐데, 정부의 연기금 성과평가 척도 변경 등으로 투자를 압박하면 시장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연기금의 한 CIO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 중심으로 연기금이 투자해 올해 국내 주식에서만 20%에 가까운 이익을 거뒀는데, 코스닥에서 그만큼 수익을 낼 수 있으면 투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며 "억지로 연기금을 동원해 밸류에이션이 확실치 않은 벤처기업이나 코스닥에 투자하도록 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벤처기업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책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혁신 창업기업과 모험자본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며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굳이 김대중 정부와 비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고, 종합적인 면을 관계 부처와 충분하게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kp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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