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무산…여진은 잔존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KB금융지주의 노동이사제 도입이 주주총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금융권에선 여전히 노조의 추천을 받은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분위기가 확산할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추진되는 친(親) 노동정책 기조 아래 금융노조에도 힘이 실리면서 일각에선 국내 금융회사가 사정 당국이란 외풍 이외 노조라는 이름의 내풍에도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KB금융은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노조 측이 제안한 하승수(49)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지만, 부결됐다.

사전 의결권을 행사한 3억116만7천373주 가운데 반대 의견이 77.35%, 찬성이 17.61%로 집계됐다.

결과적으론 실패했지만, KB금융이 주총을 통해 노동이사제 도입 안건을 정식으로 상정한 것은 금융권 내 새로운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란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노동자 대표를 기업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노동이사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다.

노사가 경영 현안을 두고 의견을 공유, 노사협력을 통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그간 기획재정부가 주도해 제도 도입을 추진하면서 금융권은 물론 경제 영역 전반에 도입 가능성이 예고돼왔다.

지난 17일 KB금융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 국민연금이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 파문은 확산했다.

국민연금은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로 자리매김해 왔지만, 주주로서의 의결권행사에는 지극히 보수적이었다. 그런 국민연금이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의 심의 없이 기금운용부 자체적으로 KB금융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KB금융의 지분 9.6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하나금융지주(9.64%)와 신한지주(9.55%), 우리은행(9.45%, 예금보험공사 제외 시), DGB금융지주(8.13%)도 단일 주주로는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금융회사의 노조가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할 경우 국민연금이 찬성을 던질 가능성이 큰 셈이다.

지난해 민영화에 성공한 우리은행은 이미 오래전부터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을 추천해왔다.

다른 금융지주의 경우 노동이사제 도입과 관련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제도 도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는 상태다.

한 금융지주 노조위원장은 "노동이사제는 노조 측의 목소리를 경영 과정에 적극적으로 피력할 수 있는 제도"라며 "KB금융의 논의가 출발점이 된 만큼 내부적으로 제도 도입의 장단점을 적극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노동이사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도입을 찬성하는 정부와 노조의 주장대로 '거수기'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사회가 제 기능을 회복하고 정치권 등 외부 낙하산 인사를 막아낼 방어막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기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제도적 장치가 되기엔 효율성 측면에서 우려가 크다.

인사나 보수 책정, 해외사업 추진 등 속도감 있는 진행이 필요한 경우 오히려 경영진의 고유 권한이 축소돼 노동이사제 도입 효과가 반감될 수 있어서다.

특히 최근처럼 금융회사가 검찰과 경찰의 수사 대상에 포함돼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시기에는 오히려 노조가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해 조직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일단 KB금융을 시작으로 향후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노동이사제의 순기능과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고 그 필요성을 금융권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며 "결국 노사가 제도적 장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지가 관건인데 이는 금융회사 스스로 노력이 중요한 만큼 향후 제도 도입의 확산 여부와 추진 방향을 좀 더 지켜봐야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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