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미국 달러화 가치는 지금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결정한 단기금리에 크게 좌우되곤 했지만, 이제는 장기 채권금리의 향방에 훨씬 더 민감해진 시대가 됐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시각) 분석했다.

WSJ의 제임스 매킨토시 에디터는 이날 칼럼에서 전 세계 중앙은행이 12조달러 규모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한 뒤 장기채권이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며 이 때문에 변동성이 커지면서 향후 달러화 환율을 전망하는 것도 이전보다 더욱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매킨토시는 "외환시장이 장기채권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정책결정자들은 환율에 대한 통제권을 더 잃게 됐다"며 "중앙은행은 외환시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피하고자 이전보다 더 자국 금융시장 환경에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WSJ에 따르면 과거에는 달러화가 단기금리 변화 예상치를 반영하는 연방기금금리와 2년 만기 채권금리에 좌우됐다. 일례로 미국과 독일 간 2년 만기 국채 스프레드(금리 격차)는 달러-유로 환율과 긴밀하게 연계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같은 현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이유는 자금 흐름과 경제 펀더멘털 때문이다. 고금리 지역은 이른바 '캐리'를 위한 단기 투기성 자금을 끌어들인다. 동시에 금리가 높다는 것은 경제가 성장하거나 물가상승률이 오르고 있다는 신호로 둘 다 통화 강세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환율과 단기금리의 밑바탕을 이루는 이런 역학 구조가 올해 들어 깨졌다고 매킨토시는 진단했다. 또 올해 들어 유로화 및 엔화, 파운드화 대비 달러화 가치와 10년물 국채 스프레드 간 상관관계도 지난 9월 기준으로 최소 지난 1990년대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메킨토시는 "유럽과 일본 투자자는 현금과 단기채권 금리가 마이너스인 자국 시장을 벗어나 장기 미국 국채를 집중적으로 사들였고 이 때문에 현금 흐름은 장기 국채금리에 더 민감한 양상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는 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가 지난 5년래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유럽중앙은행(ECB) 기준금리를 오랫동안 인상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왔다"며 "이는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투기로 단기국채보다 장기국채가 더 많이 움직였다는 의미고 결국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프랑스계 아문디의 바스티언 드루트 채권 및 외환 전략가는 "유럽에서 단기금리는 근본적으로 안정돼 있어 단기금리 스프레드는 많은 정보를 내포하지 못한다"며 대신 투자자들은 ECB가 테이퍼링(자산매입 규모축소)으로 강력한 경제성장세에 대응할 것이라고 베팅하면서 독일 10년물 국채가격이 출렁거렸고 이는 유로-달러 환율도 움직였다고 풀이했다.

실제 지난 두 달간 달러화 가치가 랠리를 이어갈 때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독일 10년물 금리보다 더 오르면서 시장은 장기 국채금리 동향에 초점을 맞췄다.

매킨토시는 "단기금리와 환율의 연관성이 약해졌다는 점을 보면 올해 미국 달러화 가치가 급락할 때 많은 트레이더가 왜 속수무책으로 당했는지 또한 설명된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올릴 동안 달러화 가치는 떨어졌다. 대신 지난해 12월 2.5% 수준이던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동안 지난 9월 2.05% 선까지 하락했다.

jhjin@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