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언제인가에 대해선 미국의 주택가격 하락 조짐(2006년 4월)을 비롯해 베어스턴스의 헤지펀드 베일 아웃(2007년 6월), BNP파리바의 투자펀드 상환정지(2007년 8월),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2008년 9월) 등 의견이 많다. 사실 이 사건들 모두가 위기 전개과정의 일부라는 점에서 보면 '10주년' 자체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되돌아보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2007년 들어 미국 주택시장의 버블이 꺼지면서 불거졌다. 미국 주택가격은 정부의 저소득층 주택마련 지원정책과 닷컴 버블 기간 중 주식시장 상승에 따른 부의 증대로 주택수요가 증가하면서 1990년대 내내 상승했다. 2001년 이후에는 연준의 저금리 정책으로 모기지금리가 하락한 데다 은행의 대출기준 완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모기지대출이 많이 늘어나고 주택수요가 급증, 주택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더욱이 저금리 환경 아래에서 MBS(mortgage backed security)와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등 모기지 관련 고수익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주택수요 증가에 불을 붙였다. 결국, 이러한 요인들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주택가격 상승→주택수요 증가→주택가격 상승'의 순환구조가 이어졌고 마침내 주택시장의 버블이 형성됐다.

그러나 미국 주택가격은 2006년 초 정점을 찍은 후 하락하기 시작했다. 연준이 2004년 6월부터 2년 동안 금리를 인상하자 모기지금리와 연체율이 잇따라 상승하면서 모기지대출이 줄었고, 주택수요가 급속히 감소해 주택가격의 하락을 부추겼다. 또한, MBS/CDO의 가치 하락으로 거액의 평가손실을 입은 금융기관들이 건전성 보완을 위해 이들 채권을 매각하면서 모기지대출 감소를 증폭시켰다. 이에 따라 모기지대출 감소→주택수요 감소→주택가격 하락'의 악순환이 거듭되며 주택시장의 버블이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주택시장의 붕괴는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이어졌다. 일부 금융기관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손실로 채무상환 문제에 직면하게 되자 금융 기관 간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는 신용여건을 크게 악화시켰다. 특히 공격적인 레버리지 투자를 실행한 금융기관의 유동성 문제는 도미노 효과에 의해 다른 금융기관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금융기관에 불어닥친 유동성 위기는 결국 많은 금융기관의 잇따른 파산이나 합병을 야기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됐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원은 미국 주택시장의 버블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급속 성장을 배경으로 각 경제주체의 판단 오류와 도덕적 해이가 더해지면서 각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데 있었다.

주택가격 상승세가 지속할 것이라는 각 경제주체의 과신은 투기적 주택수요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증대, 레버리지 투자 및 CDS(credit default swap)에 의한 신용보강 확대 등으로 이어져 위기를 키웠다. '효율적 시장가설'과 '시장규율'을 기반으로 금융규제가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믿고 금융부문의 자율적 통제를 기대했던 정책당국의 판단 오류도 시스템리스크를 불러오는 데 큰 몫을 했다.

이 과정에서 각 경제주체의 도덕적 해이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금융기관들은 대출기준을 완화하고 MBS를 통해 위험을 투자자에게 전가했고, 모기지 차입자 사이에서는 주택가치가 대출액 이하로 떨어질 경우 담보주택을 양도하면 그만이라는 심리가 퍼져 모기지 시장의 팽창을 재촉했다. 아울러 신용평가기관들은 최상위 신용등급을 양산하며 위험투자를 부추겼다.

되돌아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민스키 교수가 금융시장은 내재적으로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금융 불안정가설(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에서 지적했듯이 앞으로도 금융위기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위기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피해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금융위기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금융시스템 내에 잠재해 있는 '구성의 오류'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점이다. 개별 금융기관은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릴지라도 금융시스템 전체로는 안정성이 심각히 저하되는 시스템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도미노 효과나 전염 효과를 차단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 상호 간 연결 관계를 상시로 감시하고 시스템리스크 발생 시 즉각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번 위기가 이전 위기와 일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과거 위기와 마찬가지로 '신용의 버블과 붕괴'라는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주변국이 아닌 세계 경제의 중심부에서 발생했고 신용이 증권화 및 금융공학을 활용한 파생금융상품을 통하여 매우 복잡하고 불투명한 메커니즘에 의해 증폭되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위험을 예측하고 통제ㆍ관리하는 능력을 약화할 수 있으므로 금융시장에 새로운 메커니즘이 나타날 경우에는 파생되는 문제들을 점검하고 사전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요구된다.

또한,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이론이나 신념들이 때로는 금융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교훈도 줬다. '효율적 시장가설'과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신봉은 금융당국의 금융규제 완화로 이어져 금융기관들의 과도한 위험부담 행태를 부추겼고 정책당국의 초기대응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적절한 금융규제는 경제순환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자유시장경제가 정도를 벗어날 때 발생 가능한 경제적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투자자에게도 늘 새기고 있어야 할 기본원칙들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도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의 위험을 실제 사례로 보여줬다. 레버리지 투자는 안정기에는 문제가 없으나 위기가 닥치면 추가투자 타이밍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손실을 감수하면서 보유자산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쳐 손실이 크게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아울러 투자대상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구조가 복잡한 투자 상품 등 투자자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투자 영역에 대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가 요구된다.

다변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군집 행동에 따른 비이성적 투자의사 결정을 방지하고 시장혼란을 견디면서 궁극적으로는 양호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위기 시에는 자산간 상관관계가 급격히 밀접해지는 경향을 보이면서 위험분산 효과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므로 자산간 상관관계와 더불어 자산에 내재해 있는 리스크요소에 근거한 리스크관리를 병행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았고 금융시스템도 많은 부분에서 개선됐다. 하지만 앞으로도 위기는 스스로 반복해 발생할 것이고 금융시스템 개선에 따라 시스템리스크도 그만큼 진화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주는 교훈이라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다. 늘 파악해 오던 사항들이며 실천에 옮기는 데 지극히 어려운 일들도 아니다. 쉬이 잊어버리는 게 문제다. '호황기는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때이며 위기가 닥치면 그때는 이미 늦은 때다'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홍택기 글로벌투자전략연구소장 / 前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