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홍경표 기자 = 올해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으로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서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CIO)의 동시 공백이라는 사상 초유의 리더십 부재를 겪었고, 혼란기를 틈타 기금운용본부의 실장이 기밀을 유출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기금본부가 올해 2월 전주로 이전하면서 '국민연금(NPS) 패싱' 현상이 불거졌고,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손실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신임 이사장이 취임했으나, KB금융지주 노조 제안 사외이사 선임 찬성으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는 등 국민연금은 바람 잘 날 없는 '창립 30주년'을 보냈다.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선 국민연금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문형표 전 국민연금 이사장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CIO는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국민연금은 자체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적정가치에 기초해 1대 0.46이라는 합병비율을 산정했지만, 2015년 7월 10일 기금본부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삼성 측이 제시한 1대 0.35의 국민연금에 불리한 합병비율로 찬성안을 통과시켜 시장의 의혹을 키웠다.

반면 합병비율 논란이 있었던 SK와 SK C&C 합병은 외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넘겨 논란이 증폭됐다.

국민연금은 시너지 효과를 보고 합병에 찬성했다고 해명했지만, '최순실 사태'로 특검 조사가 시작되면서 삼성물산 합병 찬성에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외압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검과 검찰은 박근혜 정부가 삼성물산 합병을 돕는 대가로 삼성 측이 최순실 씨와 딸 정유라 씨의 승마 지원에 나서는 등 뇌물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법원은 문 전 이사장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국민연금에 삼성물산 합병 찬성 안건을 투자위원회에서 다루게 압력을 넣은 혐의로 문 이사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 CIO에게는 배임 혐의로 문 전 장관과 동일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국민연금 역사상 최초로 현직 이사장이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자 국민연금은 이사장 대행체제를 가동하면서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려고 했다.

하지만 리더십 공백을 틈타 올해 초 기금본부 실장을 포함한 퇴직 예정자 3명이 기금운용 기밀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적발돼 '기강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올해 4월에는 대우조선 회사채 손실 이슈가 불거지면서 혼란을 겪었다.

산업은행, 금융당국과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계속해서 발생했고, 국민연금은 결국 대우조선 사채권자 집회 직전에서야 투자위원회를 열어 부랴부랴 채무조정안을 수용했다.

이후 국민연금은 대규모 실장 인사로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했으나, 해외대체실장이 경력 기재 오류로 임용이 취소되고 강면욱 국민연금 CIO가 사의를 표명해 이사장과 CIO 자리가 동시에 공석이 됐다.

◇전주 이전으로 'NPS 패싱' 시달리는 국민연금

국민연금 기금본부는 국정농단의 혼란 속에서 올해 2월 말 서울 국민연금 강남사옥에서 전주로 이전을 완료했다.

국민연금공단 본사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에 따라 2015년 6월 전주로 이미 내려갔으나, 기금본부의 전주 이전은 공사화와 맞물려 계속해서 논란이 됐다.

기금본부가 금융중심지인 서울에서 200km 떨어진 전주로 이사한다는 데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으나 지역균형발전 논리를 이기진 못했다.

올해 국민연금 창립 30주년을 맞아 기금본부도 제2의 도약을 원했으나, 지리적 장벽으로 글로벌 금융사들이 기금본부를 찾는 것을 망설이고 국내 운용 인력은 국민연금에 지원하는 것을 꺼리는 'NPS 패싱'이 현실화됐다.

국민연금은 올해 1·2차 채용을 통해 운용역 26명을 선발했는데, 그만큼 올해 인력이 고스란히 퇴사하면서 운용 부담이 가중됐다.

새 정부 들어 김성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취임했지만, 임기 초부터 정치인 출신 금융 비전문가가 '600조' 국민연금의 최고경영자(CEO)에 합당하지 않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또 국민연금은 최근 KB금융지주 노조 추천 사외이사 안건을 기금본부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하면서 외압 논란에 휩싸이는 등 연초부터 지금까지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연기금 관계자는 "600조 원이 넘는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흔들리면 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크고 국민도 불행해진다"며 "체제 개편 등으로 국민연금이 운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kpho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