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시중은행들이 박근혜 정부 정책에 맞춰 만든 금융상품 판매를 잇달아 중단하는 등 전 정부 흔적 지우기에 분주하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 1일부터 창조금융 예·적금 판매를 중단했다. 박 전 정부의 대표적인 금융정책인 창조금융을 뒷받침하기 위해 2014년 출시된 지 3년여 만이다.

창조금융예금은 2015년 말 2조9천994억 원(19만5천233좌)이 팔렸고 지난해에도 1조7천714억원(11만1천633좌)이 판매됐지만, 올해 들어서는 예금잔액이 419억 원(11월 말 기준)으로 급감했다.

창조금융 적금도 2015년 1천332억 원, 작년 1천561억 원 어치가 팔렸지만, 올해는 703억 원까지 줄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상품 등 더 좋은 조건의 상품들로 갈아타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이 상품을 찾는 고객이 거의 사라졌다"며 "상품 라인업 정리 차원에서 판매중단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론을 뒷받침하려던 상품들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찌감치 자취를 감췄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5월부터 IBK통일대박기원통장 판매를 중단했고, NH농협은행도 10월부터 통일 대박 정기예금·적금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통일 관련 금융상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다' 발언 이후 은행들이 앞다퉈 선보인 것으로 당시 전체 상품 판매액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주목받았지만 정권교체와 함께 흐지부지됐다.

청년 일자리 창출에 쓰일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로 출발한 청년희망펀드도 존폐 갈림길에 처했다.

청년희망펀드를 위한 공익신탁의 누적 기부약정총액은 3억7천960만 원으로 2년 만에 90% 이상 급감했다. 출범 첫 달(2015년 9월) 5만 개 넘게 모였던 신규계좌 수는 올 11월 고작 5개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상품은 박 전 대통령이 1호로 가입한 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00억 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150억 원), 구본무 LG 회장(70억 원) 등 기업 총수들이 거액을 기부했고, 심지어 최태원 SK그룹 회장(60억 원)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70억 원)은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았다고 했다.

이에 뒤질세라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들도 펀드 가입 열풍에 동참했다. 은행들은 직원들에게 펀드 가입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도 수백억 원을 모았다.

청년희망펀드는 이렇게 모은 돈을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청년채용 지원금, 면접비용 지급 등으로 80억 원이 쓰였을 뿐, 1천억 원 가까이 남은 돈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계좌에서 잠자고 있다.

은행들은 정부가 바뀌면서 전 정부의 대표 정책 용어가 들어간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데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술금융이나 청년희망펀드와 같은 정책 금융상품은 시장 수요에 의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정권교체로 전 정부 상품을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기 어렵고 판매실적이 줄어들면 정리하는 게 수순"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상품 라인업을 재조정하는데 꼭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답답할 때가 있다"며 "정부 정책에 따라 모든 은행이 똑같은 상품을 찍어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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