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에도 원화 강세로 무역 여건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내놨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환율 관련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달러-원 환율이 2년여 만에 최저치로 하락하는 등 급격한 강세를 보이면서 이에 대한 산업계의 우려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원화 강세에 대한 대응책으로 수출지역의 다변화 등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혀 향후 외환시장 대응 방향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대통령의 첫 환율 언급…"원화 강세로 무역여건 만만치 않아"

6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전일 열린 제52회 무역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 통화 양적완화의 축소, 유가인상, 원화 강세 등 내년에도 우리를 둘러싼 무역여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 대통령이 환율과 통화정책 등 거시 경제 여건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달러-원은 지난달 29일 1,075.50원까지 저점을 낮추며 2015년 5월 이후 2년 반 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지는 등 급격한 강세를 보인다.

달러-원은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이후 숏포지션 차익실현 등으로 급한 하락세는 멈췄지만, 1,080원대서 호시탐탐 추가 하락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원화가 급격한 강세를 보이자 산업계에서는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끈 수출 경쟁력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나고 있다.

내년에도 원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강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돌입하면서 내년에도 금리 인상 기대가 원화 강세를 자극할 수 있다.

북한이 지난달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 하는 등 리스크가 여전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한참 무뎌졌다. 또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무장 완성을 선언하면서 앞으로는 북·미 간 협상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도 힘을 받고 있다.

원화 강세 전망의 또 다른 결정적인 요인은 정부가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지 못할 것이란 인식이 파다한 데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만큼이나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원화 강세 방어는 자칫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심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한국 정부가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환시장 개입을 자제함으로써 원화 강세가 이어지도록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시장의 플레이어들도 이를 빌미로 원화 강세 베팅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외환당국 시험대…文 대통령 발언도 '아리송'

원화 강세 지속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정부의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달 초 "한은 기준금리 인상과 원화 강세와 맞물려 수출 중소기업이 환율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 "정부는 중소기업이 환리스크 및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지 시장 상황을 관심을 두고 잘 살펴보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외환시장에서는 정부가 뚜렷한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여전하다.

문 대통령도 원화 강세 등에 따른 무역여건 악화의 대응책으로 "특정 지역에 편중된 우리의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대통령의 발언은 환율 등 거시 여건을 상수로 받아들이고 수출산업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으로 보인다"며 "원화 강세를 제어하겠다는 의미는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도 "미국이 환율조작국 기준으로 정한 개입 규모만 놓고 보면 여유가 충분할 텐데도 당국의 매수 개입이 소극적인 부분을 보면 정치적인 부담이 큰 것 같다"며 "당국의 손발이 묶였다는 인식이 강화되면 환율 하락이 더 빠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원화 강세 현상이 지속해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반론도 정부 일각에서는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연말에는 미국 금리 인상이 주요 이슈가 될 것이고, 내년도 미국의 긴축 속도로 관심이 쏠릴 수 있다"며 "달러 강세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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