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우리나라의 유명한 관광지를 물으면 우리는 어디라고 답을 하고 있을까. 한국관광공사의 '개별관광객 유치환경 종합진단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인의 해외여행 방문지 조사 결과에서 우리나라의 순위가 매년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지 않는 이유로 '한류 외에 한국만의 특별한 콘텐츠와 매력이 부족하다'를 꼽는다. 굴뚝 없는 공장인 관광산업의 진흥을 위하여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연경관을 보고 문화유산을 감상하기 위하여 여행한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과 옐로우 스톤, 중국의 장가계, 네팔의 히말라야, 노르웨이의 피오르 등은 하늘이 내린 자연경관이라 할 만하다. 요새 말로 관광 금수저라 할 수 있다. 반면 프랑스의 에펠 탑과 샹젤리제, 영국의 대영박물관,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스페인의 성 가족 성당(La Sagrada Familia)은 인간이 만든 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는 자연경관만 따지면 흙수저 관광국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신세타령만 할 수는 없다.

일본 서남부에 있는 둘레 16km, 인구 3천 명의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가 있다. 섬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기하학적 무늬의 새빨간 호박 조각품이 눈에 띈다. 땅속에 지어진 지중미술관에서는 모네를 비롯한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들이 자연광에 빛나고 있다. 리조트에는 미술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예술과 자연, 휴식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동경에서 신칸센, 기차, 배를 차례로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작고 한적한 나오시마에 어떻게 예술작품들이 모이게 되었을까. 30년 전, 나오시마는 폐업한 구리제련소의 산업폐기물로 뒤덮여 있었다. 버려져 있던 섬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은 것은 기업가와 예술가의 만남이었다. 출판·교육기업인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회장은 거금을 들여 섬 곳곳에 예술의 옷을 입혔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은 건축물 자체로 작품이 되었고, 마을 주민의 참여로 오래된 가옥은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과거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섬에 지금은 세계 각지에서 매년 7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만들어 가는 관광 정책이 전개되고 있다. 일제 강점 시절에 곡식 반출의 창구였던 군산은 지역 고유의 건축물에 이야기를 입혔다. 쇠퇴한 구도심에 방치되어 있던 식민시대 건축물을 관광 자원화한 것이다. 옛 조선은행은 근대 건축관으로, 옛 일본계 은행은 근대미술관으로, 옛 군산세관은 관세박물관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뼈아픈 역사의 흔적을 지역 관광자원으로 탈바꿈시켜 이제는 '근대 역사의 중심도시'로 주목을 받고 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약 5배 많은 관광객이 군산을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거제시도 조선 산업의 위기로 침체한 지역경제를 살리고자 관광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약 3조 원 규모의 민자 유치 및 예산 투입을 통해 리조트, 테마파크 등 복합 관광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하지만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자원 개발에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건축되는 구조물에 담길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크고 화려한 볼거리로는 발길을 끌기 어렵다. 지방정부가 다투어 건립한 테마파크와 박물관에 사람이 적은 이유이다. 나오시마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건축물, 거장의 미술품이 있기에 유럽인도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기업과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후쿠다케 회장은 30년 동안 나오시마 개조에 헌신했다. 그는 공익재단을 만들고 기부금과 주식 배당금으로 예술 활동을 지원했다. 바르셀로나의 성 가족 성당은 건축되기 시작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매년 조금씩 짓고 있다. 미완성인 성당 자체가 관광명소가 됐다. 자신의 임기 내에 세금으로 특색 없는 박물관을 지으려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외국의 사례이다. 우리나라 기업도 지방의 재래시장을 관광명소로 디자인해 주는 등 재원과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통 큰 기부와 후원으로 세계적인 관광명소를 만들어 줄 기업이 더 많이 나오길 소망한다.

금수저로 태어나는 사람이 적은 것처럼 고대부터 관광대국이었던 나라는 적다. 자연경관이 빼어나 가만히 있어도 사람이 찾아오는 나라도 많지 않다. 오히려 근현대에 들어 사람이 창조한 문화유산인 성(城), 교회, 미술관으로 관광대국이 된 나라가 더 많다. 타고 난 관광자원이 적은 흙수저 국가라고 한탄하지만 말고, 아이디어를 내고 자금을 모아 세계 최고인 관광 명물을 만드는 후손을 위한 지금 우리의 책무가 아닐까 자문해 본다.

(성대규 보험개발원장/前 금융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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