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조상제한(朝商第韓)서' 떠난 자리에 저축은행과 일본계 대부업체만 판을 치고 있다. 기업금융보다 개인여신을 다룬 금융업이 이른바 '재미'를 봤다는 의미다.

◇장기신용은행 사라지고 국민은행이 리딩뱅크된 까닭

'조상제한서'는 20년 전 세계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우리나라 대표 시중은행들의 줄임말이다. 조흥은행,상업은행,제일은행,한일은행,서울은행 등은21세기들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과도한 기업여신의 부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IMF의 요구에 따른 결과였다. 우리 경제발전을 견인한 시중은행들의 공헌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 때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있었던 장기신용은행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모두 기업여신에 특화된 은행들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흥은행,상업은행,제일은행,한일은행,서울은행의 로고(왼쪽부터)>



소액대출 위주의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kb국민은행으로 이른바 리딩뱅크 자리를 꿰찬 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일본 교포들이 종잣돈을 댄 신한은행과 단자회사가 모태인 KEB하나은행이 건재한 것도 기업여신보다 개인여신에 치중한 결과로 풀이됐다.

기업여신 비중이 높았던 은행들이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개인여신 중심의 은행들이 건재한 배경은 뭘까. 일부 전문가들은 가산금리를 결정하는 개인신용등급의 평가체계에 단서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개인신용등급은 신용조회회사(CB: Credit Bureau)가 향후 1년 이내에 연체가 발생할 가능성을 통계적으로 수치화한 것을 의미한다. '1년 이내 연체가능성은 기업으로 치면 일종의 부도율 개념이다. 신용조회회사(CB: Credit Bureau) 3사가 집계한 개인여신의 연체율 혹은 부도율은 신용등급 2등급의 경우 0.1%에 불과했다. 같은 기준으로 7등급은 부도율이 9.5%다. 2등급 대비 7등급의 부도율이 95배로 치솟는다는 의미다. 금융기관이 이윤을 창출하는 원천인 가산금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용금리는 이 부도율을 바탕으로 산정된다. 2등급의 경우 0.5%이고 7등급은 11.5%다. 신용금리 차이가 23배에 달한다.

◇개인여신은 여전히 황금알

은행은 7등급에 이르는 저신용등급자의 개인여신을 더는 취급하지 않는다. 은행권에서 밀려난 저신용등급자들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으로 몰려가는 처지로 전락했다. 대부분 저신용등급자는 1년보다는 짧은 3개월 단위로 대출을 롤오버한다. 하지만 부도율은 1년 치로 평가받는다. 그만큼 신용금리도 치솟는다. 저축은행 등이 부과하는 신용금리는 11.5%의 3개월 단위 기간 배분으로 3% 수준에 이른다.

일부 전문가들은 3개월 기준 신용금리는 3개월 단위 부도율을 바탕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개월 단위로 부도율을 산출할 경우 신용금리 수준이 1% 수준으로 2%포인트나 낮아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저축은행과 대부업 등이 3개월 기준으로 2%, 1년 기준으로 8%에 이르는 가산금리를 초과이윤으로 거둬들인다는 의미다. 저신용등급자들이 고금리 영업에 무방비로 내팽개쳐져 있었다는 뜻이다.

금융당국은 1년 단위로 개인연체율을 평가하는 모형은 글로벌 표준이라서 저축은행과 대부업 등을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입장이다. 빅데이터로 개인의 소비패턴은 물론 현금흐름까지 분석할 수 있는 4차산업 혁명이라는 개념은 금융당국자의 안중에 없다. 당국자들은 왜 개인여신을 주로 다뤘던 은행이나 저축은행 대부업 등이 지난 20년간 황금알을 낳고 있는지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 금융기관에만 유리하게 설계되는 등 불합리한 가산금리 체계도재점검돼야 한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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