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환(換)은 투자가 아닌 투기야". 필자가 기자생활을 시작하고 채 5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팀장(데스크) 선배가 술자리에서 무심코 내뱉은 이 말이 요즘 부쩍 귓가에 맴돈다. 자신이 우리나라 최초의 외환전문 기자라는 자신감이 얼굴에 묻어나 있던 당시 그 선배는 머리에 하얀 서리가 차분히 내려앉을 뿐 변함없는 모습으로 회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당시는 선배의 말이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무슨 잘난 척이냐. 술이나 마시자며 무관심하게 지나쳤을 법한 얘기니 말이다.

여하튼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원화 강세(환율하락) 흐름은 연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쉽사리 꺾이지도 않을 모양새다. 지난 한 해 달러-원 환율은 1,207.70원에 시작해 1,070.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1년 동안 137.20원이 떨어졌다. 퍼센트로 따지면 11% 넘게 하락한 것이다.

여기서 환은 투자가 아닌 투기라는 당시 그 선배의 말이 새삼 실감 난다. 왜 환 거래를 투자가 아닌 투기라고 할까. 시장 특성상 초단위 거래가 많은 데다 방향성이 정해지면 일방향 거래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가격이란 재료와 수급에 따라 오르고 내림이 있어야 하는 데 환율은 방향성 거래가 주를 이룬다. 분위기를 탄다는 얘기다. 외환위기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어떠한 환율하락 요인이 있더라도 환율이 오르기만 한 것이 그 예다.

환율이 얼마만큼 우리 삶에 영향력을 미치는 가는 비단 해외여행이나 해외 송금 뿐 아니라 금융거래에서도 나타난다.

정부는 지난해 환율 안정을 유도하기 위해 해외투자에 한해 비과세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이 때문에 지난 한 해 기관투자자들은 물론 개인들까지 해외투자(펀드)에 열을 올렸다. 우리 국민처럼 세금 깎아준다면 열심히 하는 국민도 없으니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지난해 2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비과세 해외주식형펀드의 잔액규모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 3조8천68억원, 12월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 막차를 탄 해외펀드 규모만 1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지난해 5조원 가까운 자금이 해외펀드로 몰린 셈이다.

때마침 베트남을 필두로 한 동남아 주식시장을 겨냥한 펀드와 미국, 일본, 유럽 국가에 투자하는 펀드 등은 작년 작게는 10% 많게는 30% 이상의 수익률을 자랑했다. 지난해 해외펀드에 투자한 우리 국민은 비과세 혜택에다 수익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가 했다.

그런데 이들 펀드를 환매하면 수익률은 0% 내지 마이너스일 수도 있다. 환율 때문이다. 특히 연초 해외펀드를 거치식으로 가입한 투자자들은 환으로만 수수료를 제외하고 11%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가져간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20% 이상 수익을 낸 펀드라면 몇%의 수익은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원화로 해외투자를 하려면 달러로 환전하고, 그 달러는 다시 해당 국가 통화로 환전한다. 미국 시장 투자가 아니라면 두 번의 환전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수료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환전 수수료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자본시장 발달이 더딘 개발도상국일수록 환전수수료율이 대체로 높다.

또 펀드를 환매하려면 달러로 바꿔서 다시 원화로 환전해야 한다. 펀드를 사고, 파는 데 최소 4번의 환전이 필요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수수료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원화까지 강세다 보니 실제로 해외펀드 투자자들이 손에 쥘 수 있는 수익률은 변변치 않다.

환율은 그만큼 전방위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외펀드뿐 아니라 수출, 수입업체의 채산성에도 우리나라 주식, 채권 시장에도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가격 변수를 꼽으라면 환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선 환율이 급변동할 때 정부가 개입한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정부가 금융시장에 개입하느냐고 하겠지만, 환율의 이상 급변동은 투자라기보단 투기 수요에 의한 시장교란일 가능성이 빈번한 데다 앞서 얘기한 대로 환율은 금융시장에서 직접 거래하지 않는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가격 변수라서는 점에서 더더욱 정부가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국민소득 3만달러 진입, 3% 성장을 자신하고 있다. 환율이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문은 활짝 열릴 것 같다. 그러나 수출주도 성장을 해 온 우리나라가 원화 강세 속에서 3% 성장을 할지는 지금으로썬 자신하기 힘들어 보인다. (정책금융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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