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 의장으로 제롬 파월이 다음 달 초 취임한다. 파월의장 지명 당시 일부에서는 30년 만에 박사학위가 없는 비경제학자 출신 의장이 탄생한다고 유난을 떨기도 했지만, 연준 내부에서는 물론 시장에서도 통화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에 반기는 분위기다.

파월 신임의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스템이 안정을 되찾고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개선된 가운데 통화 정책 정상화 추진이 시작되는 등 그런대로 괜찮은 여건에서 의장직을 넘겨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취임 이후 풀어야 할 과제들도 산적한 만큼 파월의장의 앞날이 녹록지만은 않다.

파월의장의 첫 번째 당면 과제로는 무엇보다도 저인플레이션 퍼즐을 꼽을 수 있다. 연준이 현재 점진적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고용 확대가 지속해 인플레이션이 중기물가목표(2%)에 수렴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연준 입장에서는 고용이 서서히 증가하면서 실업률이 4% 근처에서 꾸준히 유지되고 인플레이션이 2%의 목표 수준에 점진적으로 근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고용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인플레이션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고용과 인플레이션 간의 관계가 필립스 커브 이론에서 벗어나 되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연준 내부에서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견해가 엇갈려 금리 인상 정책 기조는 물론 통화 정책운영체계에 관한 논의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한편에서는 통화정책 정상화의 기치 아래 완화 기조를 너무 일찍 거두어들이는 것은 경제 성장을 제약하거나 자산가격의 폭락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금리 인상을 결정한 작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두 명의 위원이 인플레이션 부진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초 완화정책을 너무 오랫동안 유지하면 금융시스템 리스크가 증대돼 또 다른 위기를 낳을 수 있고 위기 발생 시 정책대응력이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새로운 통화정책운영체계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거나 물가수준 목표제 또는 명목 GDP 목표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과거 사례에서 연준은 경기불황 때 평균 5%p 내외의 금리 인하로 대응했다. 그런데 현재 FOMC의 장기 균형금리(중간값) 추정치는 2.8%에 불과하여 향후 경기침체가 발생했을 때 제로금리 하한에 다시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인식이 이러한 논의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그동안 점진적 금리 인상 기조를 최선의 방안으로 추진했지만, 아직도 저인플레이션 퍼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논란이 지속하고 있는 만큼 파월의장은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 나가야 할지 묘수를 내놓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두 번째 과제는 통화 정책의 정상화에 관한 사항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통화 정책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뀐 만큼 통화 정책의 정상화 추진을 단순히 위기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해석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넓게는 통화 정책의 임무와 그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체제나 프로세스를 금융위기 이후 변화된 금융환경에 맞게 정립해 나가는 과정으로 봐야 할 것이다.

우선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금융안정에 대한 연준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면서 일부에서는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에 더해 금융안정을 통화 정책의 책무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현재까지는 연준이 금융안정 관련 문제는 금융규제나 감독 정책을 통해 해결하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산가격이 지속해서 상승하여 금융 부문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경우에는 이러한 주장이 연준을 더욱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연준이 대차대조표 축소 프로그램을 시행함에 따라 금리정책수행 체계에 대한 논의도 재개될 여지가 있다. 연준은 양적 완화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시장금리(연방기금금리)에 대한 연준의 통제력을 담보하기 위하여 지불준비금(지급준비금)의 공급량을 조절하여 시장금리를 유도하는 기존의 코리더(Corridor) 시스템으로부터 연준이 직접 지급하는 금리(목표 상단은 지준부리금리, 하단은 환매조건부채권매매금리)를 조정하여 시장금리를 견인하는 플로어(Floor) 시스템으로 전환하였다. 2016년 11월 FOMC 회의에서 이들 두 시스템에 대한 검토가 있었으나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연준이 그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상하고 대차대조표도 축소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앞으로 통화 정책 정상화의 핵심 쟁점은 아무래도 최종 목표금리 수준과 대차대조표의 적정규모 그리고 이들 목표의 달성 시기에 관한 사항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와 관련한 시장의 요구에 대한 응답도 파월 신임의장의 몫이다.

세 번째로는 FOMC 의결구조의 변화에 따라 파월 신임의장의 리더십도 중요한 과제다. FOMC는 7명의 연준 이사와 뉴욕연준 총재(당연직), 4명의 지역연준 총재(윤번제) 등 12명으로 구성된다. 이사회는 작년 10월 이사 1명이 이미 교체되었고 올해에 4명의 신임 이사가 임명될 예정으로 이사 7명 중 5명이 바뀌게 된다. 여기에 4명의 지역연준 총재가 연초부터 새로 참여했고 사퇴 의사를 밝힌 뉴욕연준 총재도 올해 교체될 예정이다. FOMC 전체적으로 12명 중 10명이 바뀌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변화가 이루어진다.

시장에서는 파월 신임의장의 통화 정책에 대한 입장이 현 지도부와 크게 다르지 않아 통화 정책 방향 관련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FOMC 의결구조가 큰 폭으로 바뀌는 점을 고려할 때 통화 정책 기조의 연속성이 흔들릴 소지가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일부에서는 새로운 체제가 안정될 때까지는 당분간 지역연준 총재나 연준 내 관련 업무 담당 직원들의 입김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지난 수십 년간 연준 의장의 리더십은 위엄 주도형 리더십(볼커, 그린스펀)과 합의주도형 리더십(버냉키, 옐런) 등 대체로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시장에서는 정부, 법조계 및 금융계에서의 오랜 경력을 고려하여 파월의장을 합의주도형 리더십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파월의장은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지는 FOMC를 이른 시일 내에 안정시키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상의 결론이 도출될 수 있도록 이러한 리더십의 장점을 십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파월의장의 이사 재임 기간에 정책 경험이 완화적 통화 정책의 정상화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경기침체 시 그의 대응능력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만큼 이를 불식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네 번째 과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비전통적 통화 정책 수단 중의 하나로 관심을 끈 선제지침(forward guidance)에 관한 문제이다. 선제지침은 중앙은행이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지침을 시장에 제시함으로써 정책의 투명성, 예측 가능성 및 신뢰도를 제고하여 통화 정책의 유효성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수단이다. 위기 때는 제로금리 정책으로 더는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없어지면서 미래의 단기금리 전망 및 기대인플레이션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여 중장기 실질금리를 조절하는 데 성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이러한 수단의 활용도가 점차 줄어들고 있고 일부에서는 선제지침이 시장참가자들의 위험추구성향을 부추기고 시장이 보내는 경제 관련 신호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정적 효과를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연준의 정책운용을 제약하여 통화 정책의 신뢰성을 저하하는 부작용도 제기한다. 하지만 선제지침이 경제주체 사이에 건전한 기대가 형성되도록 유도하는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이러한 부작용과 순기능을 적절하게 조화시킬 방안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된다.

이 밖에도 의회를 통과한 세제개편이 통화 정책에 미칠 영향이라든지 금융규제 완화의 정도에 관한 문제, 수익률 곡선의 평탄화 현상에 대한 해석, 향후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 동조화 가능성 등 파월 신임의장이 직면한 과제들이 곳곳에 산적해 있다.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서 파월 신임의장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홍택기 글로벌투자전략연구소장 / 前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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