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정지서 기자 = "범죄와 불법 자금의 문지기 역할을 수행해야 할 은행이 오히려 이를 방조하고 조장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가상통화 거래에 필요한 계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권을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법령을 위반한 은행에 대해선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는 등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행하겠다며 강력한 경고를 날린 셈이다.

더불어 '광풍'에 비유되는 가상통화 투기를 잠재우고자 범정부 차원의 가상통화 취급업소 폐쇄 등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대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최 위원장은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이날부터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발급한 6개 은행을 대상으로 특별검사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해당 은행은 국민ㆍ기업ㆍ농협ㆍ산업ㆍ신한ㆍ우리은행이다.

지난해 12월 12일 기준으로 이들 은행에 만들어진 가상화폐 거래소 관련 계좌 잔액은 2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개별 은행별로는 농협은행의 계좌 잔액이 가장 많았다.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거래실명제 등을 추진하며 사실상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전달하자 농협은행을 제외한 은행이 신규 계좌개설 공급을 중단, 농협은행에 일시적으로 잔액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신규 계좌개설이 전면 금지한 새해 이후 은행권 가상통화 관련 계좌 잔액은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이 연일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자 금융권은 이를 시장을 냉각시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와 투자자 간 연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에 대한 현미경 검사를 통해 은행 스스로 관련 서비스 공급을 중단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오늘부터 가상계좌 관련 검사가 진행 중이라 해당 서비스와 관련한 어떤 언급도 하기 조심스럽다"며 "정부가 가상통화를 사실상 투기, 범죄 등으로 보고 있음을 당국의 입을 빌려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부터 6개 은행을 대상으로 시작된 FIUㆍ금감원 공동 검사는 오는 11일까지 집중적으로 시행된다.

은행들은 신규 계좌개설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온 관련 서비스에서도 발을 빼는 모습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임원은 "이미 신규 계좌개설을 전면 중단했고 기존에 제공하던 계좌들도 실명으로 전환되고 나면 서비스를 제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가상통화 개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고 토로했다.

우선 시중은행들은 현재 진행 중인 검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가상화폐 시장을 냉각시키기 위해 금융당국이 '보여주기 식' 검사를 통해 은행에 대한 직접 제재를 가할 경우 사실상 추가적인 관련 사업을 추진하긴 어렵다는 게 은행권의 판단이다.

현재 FIU는 가상화폐를 '고위험 거래'로 규정하고, 의심거래에 대해선 40개 이상의 항목을 점검받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긴 거래에 대해선 과태료 등의 금전 제재는 물론 담당 임직원에 대한 해임까지 가능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검사가 시장에 명확한 시그널을 주기 위한 것인 만큼 일단 결과를 지켜보고 나서 관련 서비스를 재점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jsjeo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