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일본 경제가 부활하는 조짐이 보이지만 상당 기간 일본 경제는 제로 성장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글로벌 위기 직후에는 상당히 힘든 시기를 거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일본 부동산 시장은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지면서 각각의 그룹별로 다른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도쿄의 중심가인 로퐁기힐스로 대표되는 중심지역에서 부동산 가격은 경제성장률과 상관없이 지속해서 상승하였다. 반면 '인(in) 도쿄' 와 지방핵심 거점 도시 정도로 분류 가능한 지역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유지되거나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다. 그리고 소위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적용될 정도의 소외지역에서 부동산 시세는 하락하였다. 전체 평균은 제로일지라도 세 개의 서로 다른 움직임이 부동산 시장에서 관찰된 것이다. 이들을 각각 A, B, C 그룹으로 분류한다고 할 때 그룹별로 서로 다른 세 가지 속도(three speed)가 나타난 셈이다.

특히 C그룹에 해당하는 일부 지역에서는 심지어 아파트가 팔리지 않고 이를 그대로 둔 채 주민이 이사를 가버리거나 거주자가 사망해서 아파트 주인이 사실상 사라진 상황에서 빈 아파트들이 속출한다는 얘기까지 들릴 정도이다. 한 개 동의 절반가량이 비어 있는 아파트에서 나머지 반에 해당하는 아파트 주민들이 관리비를 두 배 가까이 부담하면서 빈 아파트에 대한 난방과 청소를 부담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관리가 안 되는 경우 관이 터지거나 위생이 엉망이 되는 등 유지가 힘들어지므로 고육지책으로 이러한 부담을 감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인구가 줄고 노령화가 가속화되면 C그룹에 속한 부동산 시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사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전체 평균 상승률은 제로 수준이더라도 A, B, C 세 그룹별로 이처럼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부분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이 일본의 사례를 통해 확인된다.

최근 우리 경제 내에서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8·2 대책은 물론 얼마 전 발표된 가계부채 대책도 부동산 시장에 상당 부분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들 정책은 주로 양도세 중과를 통해 부동산 보유 부담을 늘리고 '집 좀 파시라' 라는 말이 보여주듯 다주택자에 대한 압박을 통해 수요를 줄이는 정책이 중심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신(新) DTI(총부채상환비율) 지표를 통해 부동산 담보대출을 억제하여 부동산 분야로 유입되는 유동성을 줄이겠다는 정책도 수요억제책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의외이다. 다주택자에게 부담을 주는 정책이 나오자 시장에서는 '똑똑한 놈 하나'를 보유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강남 같은 특정 지역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촉발하고 있다. 게다가 자사고 폐지 등의 정책이 강남 8학군의 부활을 암시하면서 부동산 상승의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 정책이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A그룹에 해당하는 시장을 확실하게 형성시키고 있다. 더구나 서울과 지방에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들이 지방 소재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으면서 지방 부동산이 하락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방을 중심으로 C그룹 시장도 형성되고 있다. '인(in) 서울'에 속한 부동산 가격은 유지되거나 완만한 상승을 보여준다고 할 때 이들은 B그룹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현재 정부 정책이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서로 다른 세 그룹의 부동산 시장을 형성 내지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상황이 이렇다면 부동산 정책은 이 세 그룹에 대해 맞춤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A그룹은 수요억제가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최대한 공급확대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A그룹에 속한 부동산의 공급확대를 시행하면서 대체재에 해당하는 지역을 발굴하고 개발해 나가는 경우 A그룹에 대한 공급이 늘어나는 효과를 통해 상승세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C그룹에 대해서는 공급억제와 수요확대책을 동시에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들 지역에 서는 보유세나 양도세를 인하하는 등 수요확대정책을 시행하는 동시에 신규공급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지나친 하락을 방지하도록 해야 한다. B그룹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 될 것이다. 물론 거래가 자유롭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은 시장 전체를 위해 중요하다.

각각의 지역별로 부동산 가격에 대한 정책을 이처럼 다각적이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최근 거론되는 보유세 문제도 좀 더 탄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A 그룹에 대해 보유세 시행이 검토되고 있지만, 해당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힘의 균형이 공급자에게 쏠린다. 이 경우 보유세인상분의 현재가치가 부동산 가격에 전가될 수 있다. 세금을 부과하는 만큼 가격이 더욱 상승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A 그룹 부동산을 매수할 때는 보유세까지 고려한 가격에 사들인다는 식으로 세금이 가격에 전가되기 시작하면 해당 지역 부동산을 처분할 유인은 더욱 줄어들게 되고 가격은 더욱 오르면서 정부 정책의 효과는 반감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또한, 부동산 보유세는 국세보다는 지방세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해당 지역을 더욱 살기 좋게 만드는 재원 역할을 하는 것이 원칙에 맞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방세인 재산세가 아니라 국세인 종부세를 인상하여 불이익을 주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재검토 돼야 한다. 양도세 정책도 잘 시행돼야 한다. 양도세는 기본적으로 시세차익이 있어야 내는 세금이다. 다주택자에게 보유개수 기준으로 높은 양도세를 부과하는 경우 다주택자는 가격이 적게 올랐거나 적게 오를 것 같은 부동산부터 처분하게 된다. 가격이 많이 올랐거나 많이 오를 것 같은 부동산은 세금을 줄이는 차원에서 팔지 않고 보유하게 되므로 결국 C그룹에 속한 부동산 매물이 증가하면서 C 그룹 가격은 하락하고 A그룹 부동산 매물은 감소하면서 A그룹 부동산 가격은 더욱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시행되는 제도가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 내지 '삼극화'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향후 부동산 정책은 '삼극화' 현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더욱 세심한 접근과 함께 명분보다는 실리까지 고려한 정책들을 통해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前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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