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국내 금융지주사가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회전문식' 인사를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 출신 일색이던 과거의 직군 쏠림은 다소 개선됐지만, 대다수가 금융과 경영전문가라는 획일 된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 사외이사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후보군 549명…"외부ㆍ주주 추천 0%도"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ㆍ신한ㆍ하나ㆍKB금융지주 등 국내 4대 금융지주가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관리하는 사외이사 후보군은 총 549명으로 집계됐다.

신한금융의 사외이사 후보군은 총 219명으로 금융지주사 중 규모가 가장 컸다. 하나금융이 114명, 농협금융과 KB금융이 각각 109명과 107명으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추천 경로는 지주사 내 이사회사무국 등 내부 지원부서가 추천하는 비중이 컸다.

농협금융은 사외이사 후보군 100%를 지원부서로부터만 추천받았다. 외부전문기관이나 주주 추천은 한 명도 없었다.

하나금융도 전체 후보군 중 지원부서 추천이 86%에 달했다. 외부전문기관의 추천도 극소수에 그쳤고 주주 추천은 전무했다.

KB금융은 유일하게 사외이사 후보군 추천을 복수의 외부전문기관과 주주들로부터 받았다. 사외이사나 지원부서의 추천은 없었다.

신한금융은 외부전문기관과 주주, 사외이사로부터 비슷한 수준의 후보군을 추천받았지만, 지원부서(63.5%) 비중이 가장 컸다.

과거보다 사외이사 후보군이 상시로 관리되고 있지만, 사외이사나 지원부서의 추천 비중이 지나치게 큰 것은 문제라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추천 경로조차 획일화된 후보군이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다양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단순히 규모를 공시한다고 해서 절차적 투명성을 갖춘 게 아니라 내부 지원부서의 추천이라고 해도 어떤 이유에서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를 공개해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지주사들은 외부전문기관과 주주의 추천 비중이 커질 경우 발생할 부작용도 우려했다.

한 금융지주 고위 임원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쓰는 일이라 외부 서치펌 등 활용할 수 있는 곳이 한정돼있고 수요가 늘면서 이 역시 권력화될 우려가 있다"며 "다양한 주주 구성원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있지만, 노조의 경우 무조건 입장을 수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가 선임하는 사외이사…"금융ㆍ경영전문가뿐"

외부전문기관과 주주 추천으로 사외이사 후보군에 포함되더라도 실제로 이들 후보군이 사외이사가 될 가능성은 작았다.

주주가 추천한 후보를 사외이사로 선임한 금융지주는 한 곳도 없었다.

KB금융만이 외부전문기관과 경제개혁연대 등의 추천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 농협금융은 모두 기존의 사외이사 또는 사내이사 추천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사실상 '회전문'식 선임 절차가 되풀이된 셈이다.

사외이사의 전문분야 역시 금융과 경영전문가 일변도였다.

KB금융은 7명의 사외이사 중 5명이 금융ㆍ경제 전문가였다. 신한금융은 10명 중 8명이 경영ㆍ금융, 하나금융도 7명도 5명이 경영ㆍ금융ㆍ경제, 농협금융은 4명 중 3명이 경영ㆍ금융 분야의 전문성으로 사외이사가 됐다.

전 금융지주사가 디지털 금융을 경영 화두로 내세운 지 수년이 흘렀지만, IT분야나 리스크관리 등의 전문성을 갖춘 인사는 없었다.

나머지 사외이사들은 주로 법률과 회계분야 전문가였다.

금융당국은 이런 전문성의 '쏠림현상'을 우려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교수나 경영인 등 같은 직업군 내에서도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골고루 배치돼야 하지만 현재 그 정도의 다양성을 갖춘 곳은 없다"며 "IT나 소비자 등 다양한 전문가를 영입하고 그 타당성에 대해 주주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금융당국이 내달 선보일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에 담길 사외이사 전문성을 강화하는 장치도 이 부분에 초점을 뒀다.

외부전문가와 주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하고, 소수 주주가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소수 주주의 경우 국내에선 0.1%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사람으로 제한돼 있지만, 해외의 경우 지분율을 떠나 지분을 보유한 금액 기준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놓고 있다.

새 정부 들어 '근로자 추천 이사제'가 화두로 제시된 만큼 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기존 사외이사 선임 방식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KB금융과 신한금융 등 은행 기반 노조들은 오는 3월 열리는 주총에서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 상태다.

현재 4대 금융지주 28명의 사외이사 중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는 24명(85.7%) 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근로자 추천 이사제 도입 여부를 떠나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통해 지주사와 은행 등 스스로 시장의 통제를 받을 수 있는 투명한 절차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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