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합인포맥스) 김대도 기자 =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하는 세상이 아니다"

과거의 성공이 아무리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울지라도 결코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과거에 취해 있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갈 수 없다.

고도 개발 성장 시기에 통용되던 성공 방정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고, 기존 경제이론과 정책이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다.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을 지낸 송인창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가 5명의 서기관과 함께 '한국 경제 진단과 처방-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원더박스. 352쪽. 1만7천 원)를 출간했다.

우리나라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에 몸담은 저자들은 지금까지 배운 경제이론이 오늘의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한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7명의 경제이론 대가를 초대해 우리 경제 경제가 고민해야 할 일곱 가지 주제를 살핀다.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해석되어온 대가들의 생각을 더듬어 가면서 우리 경제의 오만과 편견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재벌 문제에서는 기업 이론의 대가 로널드 코스를 불러들인다.

비용의 관점에서 기업의 순기능을 옹호한 학자로, 정부 개입을 비판하고 재벌을 옹호하는 맥락에서 자주 활용됐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는 오해라고 강조한다. 정부 무용론자가 아니고,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 개입 편익과 비용을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한다.

재벌 기업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수행할 수 있는지는 기업 사주 가의 역량과 의지에 달려있다고 한다.

혁신 전도사 슘페터에게서는 저성장의 원인과 대책을 듣는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장기화하는 저성장 추세다. 저성장을 운명으로 받아들일지, 재도약을 꾀할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국내총생산(GDP) 중심의 정책을 돌아본다.

GDP를 중시하면 지속 가능한 성장보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세제 지원과 보조금을 동원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국가 채무가 위험수위에 다다를 때까지 정부 지출을 확대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다.

새로운 혁신의 방향과 그 측정은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 저자들의 고민이 이어진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소비 문제에 등장한다.

소비가 미덕인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소비가 부족하다고 하고, 개인의 입장에서는 분수에 넘치는 소비가 문제라고 한다.

과소비 경제 주체들이 모인 국가 경제는 오히려 저소비로 홍역을 앓고 있다.

개인의 과소비를 부추기지 않고 경제 전체의 수요 부족을 확충하는 방법이 논의된다.

저자들은 과연 우리에게 디플레이션과 맞설 용기와 지혜가 있는지도 반문한다.

인플레이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경제 성장률을 제고하려면 물가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는 윌리엄 필립스의 '필립스 곡선'은 재해석돼야 할 위치에 놓여 있다.

인플레이션을 감수하고서라도 성장률을 올리고, 일자리를 늘리면서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한다.

조세 평탄화 이론의 로버트 배로와 함께 정부 재원 조달 수단으로의 조세와 부채를 살펴본다.

과거 빠른 성장기에는 세수가 저절로 늘어났기 때문에 국가 부채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성장이 지속하고 있고, 유로존 재정 위기와 같이 국가 부채는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부채가 누적되는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금을 늘릴지, 국채를 발행할지 중요한 선택 사항이다.

리처드 칸의 재정 승수를 통해서는 경기 침체와 불황의 시기마다 구원 투수를 자임한 정부 재정의 역할에 관해 얘기한다.

경제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언제나 정부와 시장 사이에서 고민해왔다.

글로벌 금융 위기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지지하는 케인스주의를 부활시켰지만, 유럽의 재정 위기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들었다.

현재의 장기 침체 국면에서 정부 재정이 다시 소방수가 되어야 할지 생각해본다.

마지막 7장에서는 어떻게 좋은 정책을 만들 것인지 행동경제학의 대가 대니얼 카너먼의 조언을 듣는다.

오늘날 정책 입안자들은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고르듯 좋은 정책들을 골라서 적용하지만, 결과는 초라하다.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인간은 이상일 뿐이다. 소기의 정책 목표를 어떤 방식으로 달성할 것인지 논의가 이어진다.

저자 송인창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요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재부 국제금융국장과 국제경제관리관 등을 역임했고, 현재 ADB 이사로 근무 중이다.

도종록 정책조정국 총괄서기관, 민경신 대외경제국 총괄서기관, 범진완 국제금융국 총괄서기관, 정광조 ADB 이코노미스트, 정여진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등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dd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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