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국민에게 즐거움을 준 뉴스는 아마도 호주 테니스 오픈에서 21세의 청년 정현 선수가 세계의 강호들을 맞아 당당하게 승리하고 분전하는 모습일 것이다. '불붙은 정현'의 활약은 강추위도 녹이고 불편한 국내외 소식도 잠시 잊게 하는 신통력을 발휘하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조코비치 선수에게 완패를 당했던 이 선수는 어떻게 이처럼 성장했을까?

물론 엄격한 자기관리와 훈련이 그 바탕이겠지만, 역시 개방과 경쟁으로 세계의 강호들과 부딪히고 자기 약점을 분석하고 개선해서 끊임없이 세계적 선수들의 눈높이에 올라가고자 노력했던 것이 주효한 것 같다.

개인이 발전하려면 롤 모델(role model)이 도움되듯이 국가가 도약하기 위해서도 롤모델은 필요하다. 우리의 압축적 성장과 산업화도 일본을 따라잡자는 강렬한 의지와 일본의 산업화 모델을 보고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이렇게 구축된 산업화의 토대 위에 민주화를 이루고 그다음 단계인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새롭고 다양한 모델이 필요했고 우리는 이를 위하여 OECD에 가입했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OECD 가입의 혜택을 많이 누려왔다.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OECD 국가들과 비교하는 뉴스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고, 우리가 뒤처진 부문을 객관적으로 보고 분발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 비교 효과를 넘어서는 OECD 가입의 가장 중요한 혜택은 무엇일까?

3년 동안 OECD 대사로 근무하는 행운을 가졌던 필자의 경험으로는 가장 중요한 혜택은 정부에게 이른바 증거에 입증한 최선의 정책(evidence-based policy)을 제공해주어 값비싼 정책적 실수를 줄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OECD는 기본적으로 35개 회원국이 수많은 시행착오로 얻은 귀중한 정책 경험의 성과를 공유하는 정책 마당이다. 수많은 국가의 경험이 토론되면서 이른바 최선의 정책(best practice)을 도출하고 회원국들에 장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OECD의 공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우리의 실사구시 철학과도 맞닿아있다. 복잡한 현대의 정책환경 속에서는 종종 선의의 정책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를 가져오거나 기대한 것과 반대의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발생한다. 정책의 동기보다는 실효성을 중시하는 이러한 실증적 접근방식이 많은 선진국 정책의 밑바탕이 되었고 오늘날 중국 경제 성장의 비결이기도 하다. 이러한 철학의 정반대의 대척점이 OECD에서 종종 비꼬는 의미로 쓰이는 정책에 근거한 증거라는 표현(policy-based evidence)이다.

즉 개인이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사실로 인지하고자 하는 확정오류가 있듯이 정부도 종종 자기의 정책 목표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대되는 증거를 무시하거나 다른 이유를 들어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책적 오류를 피할 가능성을 주는 것만으로도 OECD 가입은 큰 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실증주의의 기본은 OECD 관련 통계를 단편적으로 보지 말고 종합적으로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태도이다. 예컨대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 예산 중 사회복지 지출이 10.4%(2014 기준)에 불과해서 OECD 평균인 21.6%보다 10%포인트(p) 낮은 것을 지적하고 이를 늘릴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전적으로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종종 이전 지적은 우리의 국민부담률은 약 25% 수준으로서 OECD의 평균부담률(34.4%)보다 약 10%p 낮다는 현실을 놓치고 있다. 특히 지난 15년간 우리의 부담 증가율은 3.8%로서 OECD의 동기간 증가율 0.3%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즉 사회통합을 위해서 복지 지출의 증가 필요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에 불과하다. 이때 어떤 세금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 하는 것은 국민적 합의를 통하여 결정될 것이 당연하지만, OECD는 더욱 넓은 세원과 낮은 세율을 주장하고 있고 우리의 높은 면세자 비율(48%)을 축소하고 간접세 비중의 확대를 제안하는 점을 참고로 밝혀둔다.

OECD의 통계를 종합적으로 보면 우리는 경제적 성취보다 사회적 자본이 취약한 것이 가장 큰 약점으로 떠오른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운 우리나라의 자살률 통계이다.

우리의 10만 명 당 자살률은 2003년부터 일본을 제치고 부끄러운 1위가 되었고 현재도 30명 수준으로 OECD 평균보다 무려 3배에 달하고 있다.

차제에 지난 5년간 자살자 7만 명의 심리 부검을 통하여 2022년까지 자살률을 반으로 낮추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우리나라 정현 선수의 선전이 또 다른 우리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듯이 OECD의 일부 부끄러운 통계도 우리가 우리의 약점을 고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정현 선수가 세계 테니스계를 호령하고 우리의 자살률은 2022년 혹은 그 이전에 절반으로 확 줄어들고 사회통합 통계는 모두 급상승하며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앞당겨지길 기대해본다.

OECD 가입의 효과가 골프장에서 OECD 룰을 적용하는 것에 그치면 부끄럽지 않은가. (허경욱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 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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