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이 외환시장 리스크로 자본유출을 우려했지만 자본유출이 가져오는 다른 효과에도 주목했다.

외국인 주식·채권 자금이 유출되면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서 물가도 같이 오를 수 있어서다.

한 금통위원은 1월 금통위 회의에서 "국내 자본유출이 환율 변동을 통해 물가 등 거시경제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면 정책금리 역전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여길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 집행부도 물가상승의 또 다른 변수로 유가와 달러-원 환율을 지목했다.

한은은 8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2018년 2월)에서 "유가와 달러-원 환율의 급격한 움직임 등으로 향후 물가경로의 불확실성이 크게 증대됐다"며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물가 상승 기조에 금리인상이 가팔라질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로 달러-원 환율도 덩달아 오를 수 있다.

금통위원들은 환율 상승을 유발할 수 있는 외국인 자본유출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미국에 이어 유럽, 일본까지 긴축 정책으로 전환할 경우 이에 따른 주요 선진국의 국채금리 상승세가 신흥국 자본유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은은 "아직 신흥국에서 자본이 대규모로 유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국별로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수 있으므로 계속 면밀히 모니터링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1월에 안정된 흐름을 보이던 국제금융시장은 금통위원들이 우려한 대로 2월들어 변동성이 더욱 확대됐다.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한 데 이어 고공행진을 펼치던 뉴욕증시마저 조정장세로 접어들었다.

달러-원 환율은 2월초 5거래일간 1,068원대에서 1,098원대까지 30원 이상 오르내렸다.

코스피도 한때 2,400선을 내주며 급락세를 보였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도를 이어가며 3조원 가까이 주식을 팔았다.

국고채 금리도 미국 채권금리에 연동되며 쏠림 장세를 나타냈다.

금통위원들이 우려한 자본유출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유출이 감지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아직은 뉴욕증시 급락에서 비롯된 금융시장의 혼란은 '건강한 조정'의 일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경제 펀더멘털이 나쁘지 않고, 글로벌 경기 회복세가 유지되고 있어 위기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금융시장 관계자는 "1월에 주가상승세가 조정없이 이뤄진 부분이 급락으로 연결되면서 국내 채권, 주식시장에도 파급효과를 보인 것"이라며 "다만, 미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경기가 좋다는 펀더멘털 확신이 반영된 만큼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면 상승세가 일부 조정을 받더라도 추세가 꺾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정없이 부풀다 터지면 오히려 시장에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금통위원들은 1월 금통위가 열릴 때와 외환시장 분위기가 달라진 만큼 자본유출의 긍정적 효과는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금통위원은 "경상수지 흑자와 함께 대규모 외국인 투자자금은 직접 투자가 아닌 이상 시장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므로 질서있는 유출은 시장 불안을 고려하면 긍정적 측면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금통위원은 "외국인 자본유출로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채산성이 좋아지고, 물가가 오르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며 "다만,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 자본유출이 심화되는 것은 리스크요인"이라고 말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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