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는 12일 지난달 3일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에 개설됐으나 본인 명의로 전환하지 않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금융위원회가 과징금 대상인지를 묻는 법령해석 요청에 대한 회신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타인이 자금 출연자를 위해 본인 명의나 가명으로 개설한 계좌를 금융실명제 실시 후 두 달간의 실명전환의무 기간 내에 자금 출연자가 아닌 타인의 명의로 실명확인 또는 전환했으나, 이후 해당 차명계좌의 자금 출연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경우 자금 출연자는 차명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하고 금융기관은 과징금을 원천징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을 발동해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긴급명령 5조는 실명에 의하지 않고 거래한 기존금융자산의 거래자는 이 명령 시행일부터 두 달 안에 그 명의를 실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뒀다.
긴급명령이 금융실명법으로 완성돼 시행된 것은 1997년 12월 31일부터다. 법 시행 이후 실명 전환하는 경우는 금융자산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했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가 드러난 것은 2008년 삼성특검 때다.
특검은 이건희 회장이 4조4천억 원의 재산을 1천199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 중 1993년 금융실명제 이전에 개설된 차명계좌는 20개였고, 1천1개는 금융실명제 이후에 개설된 것으로 파악됐다.
법제처의 이번 해석은 지난해 이건희 회장의 20개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라는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권고와 맥을 같이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혁신위의 권고안 발표 다음 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현행 실명법에서 실명전환 의무는 주민등록증을 통한 실명확인으로 완결됐다는 게 일관적인 해석이다"며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최 위원장의 이러한 주장은 자금 출연자, 즉 돈의 주인이 누구이든 계좌를 개설한 사람이 주민등록증을 통해 본인 확인을 거쳤다면 실명법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의 명의가 삼성그룹 임원들이더라도 돈의 실제 주인은 이 회장인 것으로 드러난 만큼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제처의 법령해석을 행정기관이 따라야 하는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향후 감사원 등의 감사에서 책임문제가 거론될 수 있는 만큼 이번 법제처의 법령해석의 무게는 작지 않다.
일단 금융위는 김용범 부위원장 주재로 관련 TF(태스크포스)를 꾸릴 예정이다.
법제처 법령해석에 따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금융실명제 실무운영상 변화 등을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과 함께 대응할 계획이다.
pisces73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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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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