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미투(me too) 운동이 재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의 잘못된 관행과 행태가 소속 여성 직원들의 문제 제기로 비판받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여승무원들과의 행사에서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내부직원들의 폭로가 나왔고,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여직원 골프대회를 열어 밤늦게까지 뒤풀이를 했다며 구설에 올랐다.

직장인들 사이에 익명으로 얘기를 주고받는 블라인드 앱에는 사내에서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성희롱, 성추행 사례가 올라오고 있다. 오너, 임원, 부서장, 바로 윗 상사 등 직급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성희롱이 발생하고 있으며 회사에서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 바람에 2차 피해를 겪고 있다는 피해자들의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 담당자들은 그 나름대로 해명하는데 고충을 겪고 있다. '오해였다. 사실은 그런 게 아니다'라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지만, 분노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이들의 목소리는 별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내부 구성원들의 반감을 자극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관계자들의 푸념도 들린다. 잘못 대응하다가 자칫 더 큰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이럴 땐 미투 운동이 우리보다 먼저 확산했던 해외의 사례를 참고해보면 어떨까.차량공유서비스 업체 우버가 좋은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작년에 사내 성추행 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우버는 최근 최고 다양성·포용 책임자(Chief Diversity and Inclusion Officer.CDIO)라는 자리를 만들었다. 원래 있던 다양성ㆍ포용 관련 부서를 임원급으로 격상시키고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체계를 만든 것이다.

CDIO의 최우선 임무는 여성이나 소수 인종 등이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국내에도 몇몇 기업에서 도입하고 있으나 아직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여성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 이 제도를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사내 감사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조직을 또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우버의 예를 하나 더 들겠다. 우버는 이 자리에 한국계 여성 이보영 씨를 임명했다. 이보영 씨는 우버 내부에서 승진한 게 아니라 외부에서 영입한 인물이다. 회사 내부 출신 말고 외부 전문가 영입을 통해 성희롱 이슈를 대충 뭉개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던진 것이며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성희롱 문제를 다루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 기업들도 우버의 예를 본받아 성희롱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제도적으로 정착시킨다면 직원들에게 환영받지 않을까. 여성 직원들은 좀 더 안심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회사에 다닐 수 있을 것이고, 마초 문화에 익숙했던 남성 직원들은 불필요한 언행을 삼갈 것이다.

미투 운동을 벌이는 여성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가해자가 처벌됐으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후배들과 우리 아이들이 이런 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고, 위험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를 바꿔보자는 게 이들이 원하는 궁극적 목적일 것이다.

최근 '미투'에 화답해 공감과 지지를 뜻하는 '위드 유(With You)'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여기서 힌트를 얻길 바란다. 여성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와 절차를 사내에 정착시키는 것이 바로 기업들이 할 수 있는 '위드 유'일 것이다. (산업증권부장)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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