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합인포맥스) 김대도 기자 = 거센 미국의 통상압박 파고 속에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질 조짐이다.

세탁기·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와 철강·알루미늄 관세 폭탄 등으로 본격화한 통상 압력이 외환시장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냉전 시대 산물인 '무역확장법'을 근거로 고율 관세를 추진함에 따라, 외환시장에서도 이미 사문화된 '종합무역법'이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4월에 나올 환율보고서에서 우리나라가 2015년 '교역촉진법'상의 심층 분석대상국(환율조작국 의미)에 지정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분석됐다.

◇'버려진 법'으로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20일 정부 등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 16일(현지시각)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232조에 대한 철강산업 조사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 대통령 직권으로 국가 안보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특정 제품을 조사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무역 제재를 담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날 선 긴장감이 팽팽하던 1962년에 제정되고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사실상 사문화됐다.

법 제정 전문에 공산주의 경제의 침투를 막는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로 냉전의 소산이다.

그런 법을 미국이 공식적으로 들고나오며, 우방국 중에 유일하게 우리나라를 경제 제재한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외환 당국 입장에서는 4월 예정된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발등의 불이다.

2015년 교역촉진법(Trade Facilitation and Trade Enforcement Act) 제정으로 사실상 용도 폐기된 1988년 종합무역법(Omnibus Trade and Competitive Act)이 재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4월 환율보고서에는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 작년 하반기에 환율 조작을 위해 종합무역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결론을 냈다"고 기술하며 종합무역법 적용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종합무역법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이나 경상수지 흑자국 중 환율 조작 혐의가 있는 나라를 환율조작국(currency manipulator)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기준이 모호하다.

이 때문에 2015년 교역촉진법 7장 베넷-해치-카퍼(BHC) 수정 법안에는 200억 달러 이상 대미 무역 흑자 등의 세 가지 구체적 요건이 명시돼 있다.

2016년부터 매년 4월과 10월 미국 재무부가 내놓는 환율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환율조작국을 뜻하는 심층 분석대상국(enhanced analysis)이 아닌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분류됐다.

국제금융시장의 한 전문가는 "미국·중국의 통상전쟁이 시작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묶을 수 있어서, 우리도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특정 국가의 통상압박이 우리 외환시장에 부담 내지 압박을 줄 정도로 오고 있진 않다고 생각하다"고 말했다.

◇대미 흑자 꾸준히 감소…심층 분석대상국 가능성은 작아

우리나라가 교역촉진법상 심층 분석대상국 오명을 쓰지는 않으리라고 점쳐진다.

200억 달러 대미 무역수지 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를 넘는 경상 흑자 요건에는 여전히 해당하겠지만, GDP 대비 2%를 웃도는 달러 매수 개입 조건은 충족하지 않아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1년 동안 늘어난 외화 보유액은 182억 달러, 선물환 포지션은 63억 달러 수준이다.

이를 바탕으로 달러 인덱스 변동치를 고려한 보유외환 증감분과 선물환 포지션 변동치를 합산한 결과, 지난해 외환 당국은 약 130억 달러를 매수한 것으로 추정됐다.

작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개략적으로 1조5천억 달러로 잡았을 경우, 0.8% 수준에 불과하다.

달러-원 환율이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던 지난해 11월과 12월에 선물환 중심으로 개입 규모가 다소 컸다.





<연합인포맥스가 추정한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 규모 및 월간 달러-원 평균 환율 추이>



작년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784억6천만 달러로 GDP의 5%대로 전망되고 있다. 심층 분석대상국 요건인 GDP 3%를 초과한다.

대미 무역 흑자는 미국 상무부 기준으로 229억 달러로 200억 달러 기준을 넘었다. 다만 2015년 283억 달러, 2016년 277억 달러에서 점진적으로 흑자 규모가 감소하고 있다.

관세청 기준으로는 179억7천만 달러 대미 흑자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2012년 이후 5년 만에 200억 달러를 하회했다.

작년 무역 통계 이래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달성하면서도 미국에서만큼은 흑자를 줄이려 노력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자동차(-3.9%)와 차 부품(-15.6%) 수출이 감소했고, 천연가스·기타 석유제품(121.9%)과 반도체 제조용 장비(102.8%)의 수입이 크게 늘었다.

외환시장의 한 참가자는 "대미 흑자를 계속 줄여왔다는 점을 미국에 강조해야 한다"며 "심층 분석대상국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고 말했다.

dd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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