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대한민국 거시경제의 최고 책임자 가운데 한 명인 한국은행 총재 선출을 위한 장이 열렸다.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 7명 가운데 한 명으로 당연직 의장이다. 임기도 4년에 달하는 등 독립성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경제부문 최고의 공직이다.

한은 안팎에서 쟁쟁한 인물들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누가 총재로 선출되든 능력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모두가 훌륭한 식견을 가진 전문가들이여서다.

다만 중앙은행 총재와 당연직 금통위원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에 대해서는 좀 더 엄정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직한 총재들은 중기 물가 목표치를 임기 중에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계부채 규모를 1천400조원 규모로 늘리는 데 한 몫 했다.

새로 올 총재는 소득 분배에 대해서도 좀 더 세밀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리와 환율 등 거시경제 변수는 기업 친화적으로 운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계 소득의 원천인 금리 수준은 초저금리로 운영됐다. 환율 수준도 가계의 구매력 보다는 수출기업에 유리하게 운용된 게 사실이다.

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15년 동안 가계소득 비중은 67.9%에서 62.0%로 하락한 반면, 기업소득 비중은 17.6%에서 24.6%로 크게 늘었다. 소득의 균형이 깨졌다는 의미다.

어렵다고 엄살을 부리지만 기업은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10대 그룹 기준으로만 현금성 자산이 112조원에 육박한다. 전년 대비 무려 8.6%나 늘었다. 전통적인 경제모델로 보면 기업은 돈을 빌리는 차입 주체였지만 요즘 기업들은 돈놀이를 할 정도로 돈이 많다. 그룹 재무실은 증권사의 집중 로비 대상이 된 지 오래됐다.

과거의 경제구조는 기업이 돈을 빌리고 이자를 금융기관에 지급하면 가계로 이자 수입이 환원되는 구조였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이런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 빚쟁이 가계는 돈이 없어서 이자를 금융기관에 지급하고 현금을 쌓아 놓은 기업은 각종 금융상품으로 이자를 수취하는 기형적인 자금 흐름이 일상화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시경제 환경은 그 이전에도 지나치게 친 기업적으로 운용됐다.

지금은 대통령 정책실장이 된 장하성 전 고려대 교수에 따르면 지난 1990년 이후 26년간 경제주체 가운데 기업만 소득 증가율이 유독 높았다. 해당기간 국내총생산의 누적 증가율은 260%에 달했지만 기업 총소득의 누적증가율은 358%에 달했다. 가계의 총소득의 누적증가율은 186%으로 기업의 반토막 수준에 그쳤다.

가계와 기업의 소득 불균형은 조세정책 등을 통해 바로잡아야 할 사안이다. 금리와 환율 등 거시정책 차원에서도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 올 한은 총재의 임기 4년은 다른 임기제 공직에 비해서도 이례적으로 길다. 책임감을 느끼고 거시경제의 건전성을 관리해달라는 금융시장과 국민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다. 소신만 있다면 한은 총재는 4년간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참 멋진 공직이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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