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통일된 기준 없이 제각각인 은행권의 가산금리 산정체계를 강하게 질타했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은행이 오히려 대출 시기나 상품에 따라 금리를 주먹구구식으로 산정해 소비자를 차별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 위원장은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별 은행이 결정하는 가산금리는 산정 방식이 투명하고 객관적, 합리적이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간 금융당국은 금리와 같은 가격변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금리나 수수료 등의 가격변수는 금융회사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이란 취지에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은행의 가산금리가 금융당국의 심판대에 오르내리자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관치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이 같은 우려를 인식한 듯 이날 최 위원장은 "금리는 시장 경쟁을 통해 결정되는 가격변수로 정부가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예금금리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은 데 반해 예대금리차가 커지는 것은 자율적인 금리 결정권을 가진 은행이 타당성을 설명해야 한다는 게 최 위원장의 논리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가산금리 산정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건 것은 지난해 연말이다.

당시 신한은행은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과 금융채 5년물을 기준으로 한 주택담보대출의 가산금리를 각각 0.05%포인트 올렸다. 예금금리를 먼저 올린 데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신한은행의 가산금리 인상 근거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신한은행은 인상 3주 만에 가산금리를 원래 수준으로 낮췄다.

이후 금융당국은 지난달 말까지 국민·신한·우리·KEB하나·SC제일·씨티은행 등 6개 은행을 대상으로 현장 검사를 진행하면서 전반적인 금리산정 구조를 점검했다.

이 과정에서 가산금리 구성요소로 은행이 부과하는 마진율을 뜻하는 '목표이익률'이 은행별로 상이하게 적용되거나 기준 없이 상향 조정하는 사례가 적발됐다.

주택담보대출과 기타 신용대출, 한도대출 등에 동일한 목표이익률을 적용하는 은행이 있지만 대출 상품마다 다른 목표이익률을 부과하는 은행도 있었다.

은행의 순이자마진(NIM)과 직결되는 목표이익률 수준도 은행별로 달랐다.

지난해 9월 기준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신한은행은 1.27%, 우리은행은 1.31%, 국민은행은 1.40%의 목표이익률을 부과했지만, KEB하나은행은 2.30%를 적용했다.

신용대출에서도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각각 1.27%와 1.31%의 동일한 목표이익률을 부과했지만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의 목표이익률은 각각 2.12%와 2.73%로 1%포인트(p) 가까이 높았다.

그 밖에 고객의 신용등급이나 담보 종류에 따라 평균 예상 손실비용을 추정해 반영하는 위험프리미엄을 적용하는 기준도 제각각이었다.

이에 금융당국은 향후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은행권 스스로 금리산정의 투명성과 객관성, 합리성을 점검하고 대출 금리 인하 요구권 등의 제도적 실효성도 따져볼 방침이다.

하지만 줄곧 가계 대출에 의존해 손쉬운 이자놀이를 해왔다며 은행의 영업 관행을 비판해 온 금융당국의 이러한 조치를 두고 은행권에선 지나친 규제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국내 은행의 가산금리가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인데도 당국의 이런 규제는 사실상 가산금리를 낮추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미국의 가산금리와 비교하더라도 국내 은행은 1%p 이상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를 앞두고 취약 차주에 대한 배려는 좋지만, 은행 입장에선 당국이 금리를 낮추라는 무언의 압박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의 우려와 관련해 금융당국은 금리 수준이 아닌 산정체계의 절차적 타당성을 점검하는 차원임을 분명히 했다.

최 위원장은 "국내 은행의 가산금리 수준이 적정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며 "산출 체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고 강조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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