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이렇게 빨리 물러나실 줄 몰랐죠. 신임 원장을 위해 20년 이상 몸담은 조직에서 사표 내고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허탈합니다."

채용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에 휘말린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6개월여 만에 물러나면서 금감원 내부는 물론 지난해 일괄사표를 내고 퇴임한 금감원 임원들도 충격에 휩싸였다.

일각에서는 조직쇄신 차원에서 단행한 물갈이 인사가 금감원 리더십 공백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 원장은 지난 11월 말 부원장 4명과 부원장보 9명 등 임원진 13명을 전원 물갈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금감원 출범 이후 임원 전원이 교체된 것은 처음이었다.

일괄 사표 제출은 새로운 원장이 오면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절차였지만 업무 연속성 등을 이유로 최소 2~3명 정도는 재신임해왔다.

채용비리 등 각종 비위 행위로 얼룩진 조직을 쇄신하기 위해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예상은 있었지만, 부원장보 이상 모든 임원이 옷 벗고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연말 인사에서 승진이 유력하게 점쳐졌던 능력 있는 임원들까지 내보내면서 조직의 불안감은 커졌고 보여주기식 인사라는 불만도 쏟아졌다. 비슷한 시기에 KB와 하나금융을 담당해온 은행담당 국장이 갑자기 지방으로 좌천당하면서 분위기 쇄신은커녕 직원들의 사기는 더욱 꺾였다.

하지만 퇴직 임원들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맞다"면서 한결같이 "조직이 더 잘되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퇴임사를 남기고 떠났다.

하루아침에 쫓겨났지만, 신임 원장이 하루빨리 조직을 추스르고 금감원이 권위를 회복하고자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졌고, 사흘 만에 급작스레 사의를 표명하면서 이 같은 바람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한 퇴직 임원은 "지난해 연말부터 하나금융과 갈등을 겪으면서 불안하긴 했지만, 최 원장이 굳게 조직을 다잡고 나아갈 것이라 믿었다"며 "사표가 수리되고 조직을 나간 지 6개월 만에 이런 일이 생기니 솔직히 허무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조사를 통해 이번 의혹이 명백하게 밝혀질 것으로 보지만 국민의 신뢰는 더 잃었다"며 "신임 원장이 오기까지 최소 한두 달은 걸릴 테고, 또다시 임기 6개월 된 임원들을 대상으로 재신임 절차를 거치는 등 쇄신 작업을 또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최 원장이 최단 임기 사임이라고 불명예로 물러나면서 공무원들의 일괄사표 관행이 조직 위기를 좌초한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고 보고 있다.

조직쇄신 차원이라 하지만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임원이 수장이 바뀔 때마다 물갈이된다면 업무 전문성은 물론 인사 공정성에 대한 신뢰 저하, 조직 불안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괄 사표 관행이 수장에 대한 충성도 테스트나 공무원 길들이기 수단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이 진정으로 조직을 쇄신하는 인사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능력 있는 임원은 원장이 바뀌어도 살아남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더 신뢰감을 줄 방법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앞으로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떠나는 임원이 발생하면 금감원 직원들의 사기도 꺾일 수 있다"며 "잦은 물갈이 인사는 사회적으로도 낭비"라고 강조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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