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세종=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김대도 기자 =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 내용에 대해 공개를 검토하는 것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전방위 무역 압박의 영향이 크다.

강고한 한·미 동맹을 축으로 하는 외교·정치적 협력 관계와는 별개로, 트럼프 정부는 동맹이더라도 경제적 이익을 해치는 국가에는 강력한 보복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한 25% 철강 관세를 피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과정에서 불리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 현황 공개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우리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원화 가치 절상 흐름을 방어하면서, 수출 기업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지속 의심해 왔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의 한 요인으로 본 것이다.

최근 미국의 무역 압박 속에 내달 미 재무부가 발표할 환율보고서에서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경우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다.

최근 정부가 미국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는 것을 상반기 안에 결정하겠다고 한 것도 이를 위한 사전 포석이란 해석이 나온다.

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외환시장 개입 현황을 공개해야만 한다.

결국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통상 관련 현안을 돌파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외환시장 이슈를 들고 나온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18일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권고를 고려해 외환시장 투명성 제고 등을 포함한 외환시장 선진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구체적인 방안은 검토 중이며, 결정된 바는 없다"면서도 "IMF와 지속 협의 중이다"고 설명했다.

명시적으로 외환시장 개입 현황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말하는 외환시장 투명성 제고 방안 가운데 핵심은 개입 현황에 대해 시차를 두고 공표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최대 지분을 가진 IMF와 미 정부가 오래전부터 우리 정부에 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가 인위적인 달러 매수 개입으로 원화를 절하해, 경상수지 흑자를 꾀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 감축에 정책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트럼프 정부에서는 사문화된 1988년 종합무역법을 활용할 수도 있다.

수년째 대미 경상수지 흑자를 줄여나갔음에도 미국의 의심은 계속되고 있다.

IMF의 환율제도는 개입정보 공개 여부에 따라 변동환율제도(floating)와 자유변동환율제도(free floating)로 나누는데, 우리나라는 개입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변동환율제도에 묶여있다.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검토하고 있는 것에 대해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배경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최근 미국과 관련된 통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달 트럼프 정부는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와 1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대미 흑자가 큰 국가를 타깃으로 본격적인 통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세탁기·태양광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로 위기감이 고조됐던 우리 경제는 미국발(發) 통상 압박의 파고의 중심에 놓이게 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철강 관세 문제가 터지자 대미 수출전선에 암운이 드리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 중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철강 관세 대상에서 제외하며, 관세 문제를 한미 FTA 협상에서의 지렛대로 활용할 것을 시사했다.

이 같은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 현황을 공개하는 카드를 던지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이다.

FTA 협상 과정에서 국가 경제적으로 파장이 덜한 부분을 주고, 철강 관세 감면 또는 다른 유리한 부분을 취하겠다는 판단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시장 급변동의 경우에만 미세조정(스무딩오퍼레이션)을 해왔고, 앞으로도 이러한 방침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 시장 개입 내용을 드러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1개월 후에 내역을 공개할지, 달러 매수·매도를 합쳐 총액으로 접근할지 등의 세부적인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주도의 CPTPP 가입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외환시장 개입 공개의 배경이 된다.

일본과 캐나다, 호주, 멕시코 등 CPTPP 11개 회원국은 인구 5억 명에 국내총생산(GDP) 기준 전 세계 13.5%를 차지하고 있는데, 미국이 참여하면 GDP 비중이 37.4%로 뛴다.

NAFTA와 현재 추진 중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넘어서는 세계 최대 경제블록이 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상반기 안에 CPTPP 가입 여부에 대해 부처 간 합의를 도출하고, 통상절차법상 국내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말한 이유다.

CP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외환시장의 정부 개입 규모가 상세하게 공개돼야 한다.

김 부총리는 19∼2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미국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면담한다.

양국 간 주요 경제ㆍ금융 현안과 협력 방안은 물론 최근 불거진 통상 현안, 환율보고서 문제 등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의할 예정이다.

국제금융시장의 한 전문가는 "일본처럼 개입 내역을 날짜별로 공개하는 것은 이르지 않나 한다"며 "시장에 파장이 크지 않게 점진적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4월에 예정된 미국의 환율보고서는 2015년 교역촉진법을 근거로 한다.

200억 달러 대미 무역수지 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를 넘는 경상 흑자, GDP 대비 2%를 웃도는 달러 매수 개입 조건에 해당하면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1년 동안 늘어난 외화 보유액은 182억 달러, 선물환 포지션은 63억 달러 수준이다.

이를 바탕으로 달러 인덱스 변동치를 고려한 보유외환 증감분과 선물환 포지션 변동치를 합산한 결과, 지난해 외환 당국은 약 130억 달러를 매수한 것으로 추정됐다.

작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개략적으로 1조5천억 달러로 잡았을 경우, 0.8% 수준에 불과하다.

작년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784억6천만 달러로 GDP의 5%대로 전망되고 있다. 대미 무역 흑자는 미국 상무부 기준으로 229억 달러로 200억 달러 기준을 넘었다.

다만 2015년 283억 달러, 2016년 277억 달러에서 점진적으로 흑자 규모가 감소하고 있다.

dd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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