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영화 한 편이 세간에 화제다. 바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튤립 투기현상을 배경으로 한 영화 '튤립 피버(Tulip Fever)'에 대한 이야기다. 비록 영화는 흥행에 참패하고 전문가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된 400년 전 일어난 튤립 투기 열풍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절대 가볍지 않다. 현재의 비트코인 투기 열풍이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현상과 매우 닮아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은 1593년부터 무려 44년간 진행된 세계 최초의 경제 버블현상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잘살던 네덜란드에 터키의 튤립이 유입되자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던 사람들이 튤립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귀족과 상인들은 물론 서민층에게까지 튤립 광풍이 불면서 한 뿌리의 가격이 4천 플로린(florin)까지 급등했다. 당시 일반 가정 1년 생활비가 300플로린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얼마나 고평가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수요 폭증으로 치솟던 가격은 튤립이 비정상적으로 비싸졌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급격히 하락세로 돌아선다. 불과 4개월 만에 100분의 1가격으로 폭락하고 거품이 일제히 꺼졌다. 뒤늦게 튤립 투기에 동참했던 많은 사람이 결국 큰 손해를 입었고 네덜란드 경제는 한동안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1637년 튤립 투기로 전 재산을 잃은 사람들의 시신이 매일같이 라인강에 떠올랐다고 한다.

국내 비트코인의 가격은 2017년 1월 약 100만원이었으나 올해 1월 7일 약 2천500만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1년 사이에 2천500%의 가격변동성을 보인 것이다. 이에 놀란 정부는 긴급히 거래실명제 등 가상화폐에 대한 각종 규제안을 발표하였다. 아울러 미국, 중국, 인도 등 세계 각국이 가상화폐에 대한 강력한 규제 정책을 발표하자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하였고 심리적인 저항선인 1천만원대가 붕괴됐다. 1월 한 달 사이에만 비트코인의 가격은 약 3분의 1토막이 났고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47조원이 증발한 셈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는 '비트코인은 튤립버블보다 더 심한 사기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어떤 자산의 합리적인 가격은 그 자산의 내재가치와 연관된다. 비트코인의 가격에 대해 여전히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이 화폐로서의 가치와 블록체인 기술의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있고 그 가격이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의 가치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지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비트코인을 보유한다고 해서 소유자가 배당에 대한 권리나 청구권을 갖는 것도 아니므로 그 자체로 내재가치가 없다. 그래서 혹자는 비트코인을 수집품에 비유하여 그 가격이 지극히 주관적인 선호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비트코인의 가격에 대해 모두가 수긍할 만한 설명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정부의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한 첫 조치로 정부는 가상화폐거래소 실명거래를 시행했고 이는 시의적절 했다고 본다.

실명거래 정책 도입으로 거래소의 내부거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하지만 가상화폐에 투자한 젊은층 가운데 최근의 급격한 가격폭락으로 인해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일명 '비트코인 블루'라는 신종 우울증상이다. 벌써 '비트코인 블루'로 의심되는 죽음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어 튤립 버블의 비극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튤립 버블을 통해 얻어야 하는 교훈은 연착륙을 통해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매우 정확하다. 거래실명제가 도입된 시장이 필요한 것은 적정한 가격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정부의 더욱 강력한 추가 규제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수록 투자자들은 더욱 위축되어 자칫 잘못하면 튤립 버블과 같은 비극이 재연될 수 있다. 가상화폐의 적정가격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럴 때 최선의 방법은 시장을 신뢰하고 맡기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투자자들의 진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에 준하는 보안기준을 가상화폐 거래소에 적용하여 안전한 시장을 구축해주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비트코인에 쓰인 분산형 보안기술에 대한 얘기다. 블록체인 기술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술이 될지 아니면 반짝이고 사라지는 기술이 될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우리 정부의 입장과 사회에서 감지되는 분위기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정부의 지나친 우려가 국내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싹을 아예 잘라 버리는 것은 매우 염려스럽다. 각종 규제로 묶여있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서 활약하기 힘든 현실에서 적어도 '가장 빠른 추격자(Fastest Follower)'가 될 수 있는 역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ICO(Initial Coin Offering) 금지정책은 지나친 규제로 보인다. 더 진화된 코인의 개발을 통해 경제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다양한 코인이 개발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문가와 기술력이 축적될 수 있다. 현재의 전면적인 ICO 금지정책을 피해 해외에서 암호 화폐를 공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매우 안타깝다. 정부는 ICO를 금지하기보다 가상화폐 시장의 가격이 기술력에 따라 평가받을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최근 지속해서 논의되고 있는 디지털중앙화폐(CBDC)의 등장이 혹시 블록체인 기술의 축적과 진화로 인해 앞당겨질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허윤석 서울대학교 금융경제연구원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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