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KB금융지주 노동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가 또다시 주주총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로써 금융회사의 노동이사제 도입은 내년으로 공을 넘기게 됐다.

KB금융은 23일 여의도 본점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 노조가 추천한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으나 부결됐다.

그간 금융권은 권 교수를 추천함으로써 올해 금융회사 주총에서 유일하게 노동이사제 도입을 가시화한 KB금융을 예의주시해왔다.

하지만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해당 안건에 반대 의사를 피력하면서 노동이사제 도입이 무산될 것으로 보는 이가 많았다. 앞서 해외 자문권 의결기구인 ISS도 반대를 피력한 바 있다.

KB금융 노조가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한 것은 두 번째다. 지난해에는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지만, 주총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간 금융권 노조들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이란 대통령선거 공약에 힘입어 노동이사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우리은행 등은 올해 주총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가시화하지 않았다. 사측과의 논의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고, 최고경영자(CEO)와 지주사 전환 등 개별 금융회사가 당면한 이슈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금융권은 연내 범 금융권 차원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움직임을 준비 중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올해는 개별 금융회사마다 현안이 많아 노동이사제에 집중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며 "하반기에는 금융노조 차원의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 정부가 노동이사제 도입을 지지하고 있는 만큼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다"며 "지난해 혁신위까지 권고했던 사안인 만큼 내년 주총에선 개별 금융회사들도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무조건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금융 공공기관이 우선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주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선임해 CEO의 경영 전반을 감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당시 혁신위도 민간 금융회사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노동이사제는 노사 간 전반적인 합의가 우선해야 할 문제라며 민간 금융회사가 우선으로 도입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노동이사제 도입 취지에 대해선 모두가 공감하고 인지하고 있지만, 민간의 영역에선 법상, 규제상 다른 문제가 수반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노사 간 절충안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노조를 중심으로 내년께 노동이사제 도입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이에 대한 우려가 큰 상태다.

한 금융지주 임원은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이야기하고 검토도 하고 있지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국내 금융지주의 경우 대부분 70% 가까이 외국인 주주로 구성돼 있어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내다봤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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