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금융감독원장이 또다시 낙마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금융개혁 추진 동력도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채용비리의 덫에 걸려 낙마한 데 이어 금융권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김기식 원장마저 과거 의원시절 '외유성 출장'에 대해 위법 결정을 받아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금감원은 또다시 수장 공백 상태를 맞이하게 됐기 때문이다.

금융개혁의 한 축으로 금감원과의 팀워크를 맞춰야 할 금융위원회 역시 금감원장의 사퇴가 되풀이되는 데 허탈함을 느끼고 있다.

외유성 출장 논란 등 각종 뇌물수수 의혹을 받아온 김기식 금감원장이 16일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2일 취임한 지 보름, 외유성 출장 논란이 제기된 지난 7일 이후 9일 만이다.

김 원장의 사의가 수용되면 역대 최단 기간을 재임한 금감원장으로 기록된다.

김 원장은 이번 정부가 금융개혁을 늦추지 않겠다는 결단력을 강조하며 임명한 인사라 사퇴가 미치는 파장이 더 크다.

과거 참여연대에서 금융 관련 문제를 오래 다뤘고, 국회의원 시절 금융위와 금감원을 직접 다룬 정무위원회 소속으로 빛나는 활약을 선보였다는 게 당시 김 원장의 임명 배경이었다.

그만큼 문재인 정부는 금융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강조해왔다.

은행 등 제도권 금융을 '적폐'로 지적하는 인식도 곳곳에서 강조돼왔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금융권의 갑질, 부당 대출 등 금융 적폐를 없애겠다"고 언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금융권 적폐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얼음장같이 차갑다"며 "그동안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이뤄졌던 금융 적폐를 적극적으로 청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부가 지목한 이른바 '금융 적폐'는 담보대출 위주의 은행 영업방식과 금융회사 지배구조, 불완전한 금융상품 판매로 인한 금융소비자 피해, 채용비리, 금융권 황제연봉 등이었다.

이후 금융혁신을 내세우며 발표된 정책들도 이들을 바로잡는 데 집중돼 있었다.

주택담보대출 등에 치중된 은행의 영업 관행을 바꾸고자 자본비율 규제를 강화했고, 예대마진에 의존한 영업을 질타했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앞세워 금융권 최고 이자율도 대폭 인하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온 은행의 가산금리 체계도 손질토록 했다.

사외이사와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재정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은 금융회사를 실제로 들여다보고 업권의 실무자들과 새롭게 정비되는 규제를 논의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역할을 담당해오던 금감원이 또다시 수장 공백 사태를 맞이한 만큼 추진 중인 금융개혁의 속도가 더뎌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원장을 선임해 금융당국의 혁신 속도를 끌어올리려 했던 문재인 정부의 카드가 악수를 두게 된 셈이다.

금융위 역시 허탈하긴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금감원장 낙마가 금감원 조직은 물론 금융당국 전체에 대한 신뢰를 반감하고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가 연이은 인사 실패로 차기 금감원장을 임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전망도 금융위에는 부담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감원이 수석 대행 체제를 통해 기존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조율하겠지만, 조직이 느끼는 피로감은 얼마나 크겠냐"며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금융위 관계자는 "그간 금융위와 금감원이 한몸, 혼연일체를 강조한 것은 그만큼 정책 추진 과정의 공조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정부조직 개편이란 거대담론을 떠나 금감원장의 연이은 낙마는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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