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최흥식 전 원장에 이어 김기식 원장까지 낙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금융감독원 내부는 혼란에 빠졌다.

채용비리와 외유성 출장이라는 도덕성 논란으로 불과 한 달 사이 두 명의 수장이 물러나면서 금감원 직원들은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했다'며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 원장은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과거 김 원장의 5천만원 셀프후원 의혹과 관련해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린 직후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언론과 야당을 중심으로 연이어 외유성ㆍ로비용 출장 의혹이 제기된지 10여일 만이다.

금감원은 정권에 가까운 실세 원장이 오면서 감독·검사 부문에서의 기능 회복과 독립성 확보 등 그동안의 숙원을 풀어줄 것이란 기대가 컸다.

금감원 관계자는 "의원 시절 행적에 대한 논란으로 결국 전임 원장과 똑같은 수순으로 물러나게 돼 당황스럽다"면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최 전 원장이 사임하면서 올해 업무계획을 짰다가 물거품이 되고 김 원장이 오면서 새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또다시 준비해야 할 판"이라며 "일상적인 업무는 계속하지만, 솔직히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말했다.

금감원 직원들은 무엇보다 연이은 원장 개인사가 금감원의 발목을 잡은 데 대해 실망스러워하고 있다.

최 전 원장은 하나금융지주 사장 시절 친구 아들의 채용을 청탁했다는 의혹으로 6개월 만에 낙마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최 전 원장의 바통을 받은 김 원장도 외유성 출장 의혹으로 도덕성 논란이 일며 취임한 지 2주, 역대 최단 기간 재임이라는 불명예 퇴진이다.

한 금감원 직원은 "다른 일도 아니고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두 수장이 잇따라 옷을 벗었고, 김 원장의 경우 현직 원장으로서도 처음으로 검찰 수사까지 받게 돼 직원들도 많이 주눅 들었다"며 "원장 리스크가 현실화되니 앞이 캄캄하다"고 털어놨다.

금감원장 리스크가 장기화하면서 금융권 현안 처리도 개점휴업 상태다.

은행권 채용비리,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편은 물론 최근 터진 삼성증권 배당 문제까지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업무 추진도 동력을 잃고 있다.

실제로 김 원장의 외유 출장 논란이 불거지고 지난 2주일간 금감원이 배포한 관련 해명자료는 10건에 가깝다.

금감원 본연의 업무보다는 김 원장의 방어 논리를 만들어 내는 데 역량을 집중해 왔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하루가 멀다고 김 원장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해명하기 급급해 지면서 직원들 사이에서는 '언제까지 원장을 변호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금감원이 금융회사를 관리·감독하는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겠느냐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금감원 한 임원은 "지난해 내부 채용비리 사건 이후 조직 쇄신을 통해 시장의 신뢰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원장들의 도덕성 문제에 발목 잡힌 꼴"이라며 "이 상태에서 검사에 나서고 제재를 해봤자 당국의 영(令)이 제대로 설 수 있을지 착잡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최대한 동요하지 않고 우리의 할 일을 해나갈 것"이라며 "이미 검증된 인물이 수장으로 선임돼 하루빨리 조직을 수습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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