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줄여보고자 서민들의 빚 부담을 덜어줄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시중은행들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설익은 정책이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오는 7월부터 변동금리 대출의 중도상환수수료를 고정금리 대출보다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출자들이 더 낮은 대출금리를 제공하는 은행으로 쉽게 갈아탈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다. 이렇게 되면 금융소비자들의 부담은 덜어주고 은행권 금리 인하 경쟁도 촉진될 것으로 금융위는 내다봤다.

하지만 은행들은 중도상환수수료 부과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 뿐 아니라 수수료 인하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고 하소연한다.

중도상환수수료는 대출받은 고객이 예정보다 일찍 대출금을 갚을 경우 금융회사가 고객에게 물리는 일종의 벌금이다. 대출 계약에 명시된 만기를 어겼을 때 내기로 한 벌금을 정부가 제한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은행에서 받는 중도상환수수료는 대출을 실행하기 위한 기본적인 소요 비용 등을 고려해 부과하는 것"이라며 "수수료비율을 낮추게 되면 이러한 대출 실행을 위한 금융비용을 은행이 도맡기 때문에 은행 측은 상당한 부담감을 안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도 "중도상환수수료율을 급격하게 낮추거나 면제하게 되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갭투자 등 단기 고수익 투자를 통해 수익을 실현한 후 대출을 상환하는 사례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수수료율이 낮은 대출 은행으로 자주 갈아 타게 되면 주거래은행의 다른 혜택을 받지 못하게 돼 고객 입장에서도 손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가 올라도 월 원리금 상환액은 일정하게 유지되는 주택담보대출을 출시하겠다는 계획도 근시안적인 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위는 지난 16일 가계부채 위험요인 점검 및 향후 대응방안을 발표하면서 은행권 공동으로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이라도 월 상환액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품을 올해 안에 내놓기로 했다.

변동금리 상품은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상환액이 늘어나 매월 갚아야 하는 돈도 늘어나는데, 그만큼 원금상환액을 줄여 기존보다 월 상환액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만기 때 늘어난 남은 원금을 한꺼번에 갚으면 된다.

시중은행 여신담당자는 "결국 만기에 잔여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것인데, 결국 차주의 부담을 뒤로 미루는 것밖에 안 된다"며 "상환능력 내에서 빌리고 처음부터 나누어 갚으라는 원리금균등분할 상환 정책에 반하며 고정금리 유도 정책 역시 무의미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커버드본드를 활성화해 장기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늘리겠다는 방안도 은행들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커버드본드 발행이 많은 은행에 적격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인데, 높은 조달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발행할 경우 오히려 더 큰 리스크를 안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한 은행 관계자는 "우량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낮은 금리로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커버드본드 발행에 선뜻 나서기도 어렵다"며 "당국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대책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추진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