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인포맥스) 김대도 기자 =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장 적응'과 '연착륙'을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밝힘에 따라 우리 정부가 마련중인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방안의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개입 정보를 내놓는 주기와 공개 범위가 자세할수록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시장 플레이어들이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로 읽힌다.

이에 따라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김동연 부총리가 밝힌 입장을 고려할 때 분기마다 순매수 규모를 공개하는 정도에서 개입 내역을 공개하는 방안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부총리는 2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기자들과 만나 "외환시장 공개는 (각국이 사정에 맞게) 일, 월, 분기단위로 하고 있고, 아주 드물게 6개월도 있다"며 "시장이 잘 적응하는 방향이라면 시기 문제는 너무 뒤로 안 가도 된다"고 말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예외를 인정받고 있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과 같이 6개월 단위로 공개 주기를 넓힐 필요는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2015년 TPP 당시는 오바마 정부 때로, 지금 트럼프 정부의 통상환경과 전혀 다르다"며 "또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하면 국제적으로 말레이시아 등과 같이 대우받아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TPP는 공동선언문을 통해 분기별 개입 내용을 다음 분기 안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말레이시아 등 3개국에 대해서는 6개월을 인정해 주고 있다.

이들 3개국이 시장 개입 정보를 처음으로 공개하는 만큼, 시장 영향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 우리 정부로서는 CPTPP의 모태인 TPP 사례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관건은 시장 개입 내용의 공개 범위다.

TPP는 달러 매수와 매도 총액을 각각 공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공동선언문에는 개입액을 내놓아야 한다고 돼 있는데, 개념 정의 부분을 통해 개입은 현물환 및 선물환, 선물, 외환 스와프의 매수 또는 매도하고 적혀있다.

정부가 TPP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분기마다 달러 매수와 매도 총액을 각각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개입 범위와 관련해 시장 영향력을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김 부총리는 "시장에서 적응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의 고위 관계자는 "TPP를 참고는 하되, 각 나라 사정에 맞게 공개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순매수 개입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순매수 개입이 아닌 매수·매도 총액으로 공개 범위가 결정되면, 일시적으로 원화 강세 충격이 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외국계 은행의 한 헤드 딜러는 "순매수는 가격에 반영돼 있지만, 매수·매도 방식으로 발표되면 1,050원을 쉽게 무너뜨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정부는 개입 정보의 공개 범위를 점차 늘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 부총리는 "점진적으로 (공개를) 하면서 연착륙하는 게 가장 좋은 모습"이라고 밝혔다.

최초 공개 수위는 TPP 수준인 매수·매도 총액에 미치지 못하고, 시간을 두고 공개 정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는 "공개 빈도, 공개 시차, 총액 또는 순액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시장이 원활하게 적응되는 방향으로 할 것인지 방법론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주요 20개국(G20)과 국제통화기금(IMF), 미국에서 요구하는 것과 잘 조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4월 중에는 외환시장 개입 내용 공개와 관련된 내용을 발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4월 27일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일정을 피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김 부총리는 "환율 주권은 외부의 요청에도 정부 스스로 개입 관련 내용을 결정한다는 뜻"이라며 "급격한 쏠림에 분명히 대처한다는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금융시장의 한 전문가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하고 급격하게 자본시장이 개방됐는데, 이후에 1997년 외환위기가 왔다"며 "3∼6개월 주기의 순매수 공개로 시작했다가, 시장 충격과 안정성을 보면서 공개 정도를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dd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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