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대출자의 모든 부채 내역을 파악해 좀 더 엄격하게 돈을 빌려주는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규제가 지난달 26일 은행권에 도입됐지만,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DSR 기준을 여유롭게 설정하고, 적용 예외 사례를 다수 마련해 놓은 탓에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대출자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KEB하나·NH농협·우리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 5곳에서 지난 한 달간 DSR 적용으로 주택담보대출한도가 줄어들거나 대출이 거절된 사례는 1% 안팎에 불과했다.

A 은행 여의도 지점 관계자는 "DSR 때문에 추가로 한도가 거절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며 "DSR로 인해 대출 한도가 추가적으로 축소되거나 위축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고 말했다.

B 은행 도곡동 지점장은 "DSR 시범 운영 기간을 포함해 지금까지 한도를 넘어 대출을 못 받은 고객은 없다"면서 "담보대출 상환 기간이 짧거나 일부 특이한 경우 대출 한도가 감소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는 DSR 비율과 상관없이 대부분 대출이 거절된다"고 말했다.

DSR은 대출자의 연 소득 대비 갚을 수 있는 원리금 한도를 정하는 지표로 신용대출, 마이너스 통장, 자동차 할부금, 카드론 등 모든 부채의 원금상환액까지 빚으로 간주한다.

은행이 DSR 기준을 100%로 잡았다면 연봉 5천만 원인 직장인은 연간 모든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이 5천만 원을 넘지 않는 수준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대부분의 은행은 담보대출의 경우 DSR 200%, 신용대출은 DSR 150%를 기준으로 정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은 20~30년 장기로 받는 경우가 많아 연간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이 줄어 DSR 200%를 웃도는 사례는 흔치 않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연봉 4천만 원인 한 직장인이 만기 20년짜리 주택담보대출 5억 원에, 신용대출 5천만 원(1년, 일시상환식, 5%), 자동차할부대출 4천만 원(3년, 원리금균등 분할상환, 4.5%) 등 총 5억9천만 원의 대출이 있다고 치자.

이 직장인이 넓은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3억 원(20년, 원리금균등 분할상환, 3.5%)을 추가로 받는다고 가정할 때 DSR은 193%로 한도의 턱밑까지 차지만 추가 대출이 가능하다.

지난 1월 신 DTI 한도와 투기지역 등 담보인정비율(LTV) 한도가 축소되면서 이미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차주의 추가 대출 한도는 대부분 줄어든 영향도 있다.

또 서민금융상품 등의 신용대출과 소액신용대출, 중도금 대출, 전세자금대출 등을 받을 때는 DSR을 따지지 않는 데다 은행마다 신용등급과 담보를 추가 검토해 한도를 늘려주고 있어 웬만해선 DSR 제한을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10월부터 고(高)DSR 비율을 따로 정해 규제를 더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아직 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어느 정도가 적절한 한도인지 감 없이 시행하고 있다"며 "지난 한 달 동안 우리가 고DSR 비율을 얼마나 취급했고, 오버됐는지도 모르는 상태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대출담당자도 "현재 DSR 기준이 워낙 높고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고 있는 분위기라 대출 실적에 거의 영향이 없다"며 "금융당국의 고DSR 감독 기준이 나오면 은행별 대응방안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아직 제도의 실효성을 얘기하기는 이르다고 본다"면서 "10월까지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은 만큼 시장의 반응을 좀 더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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