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중 간 통상 갈등이 증폭되는 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 때 차이메리카(차이나+아메리카)라는 단어까지 나오면서 찰떡궁합을 과시하던 두 나라가 이제는 서로 통상 전쟁을 벌이는 관계로 변해 버린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의 지형도를 많이 바꾸어 버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3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가 보여 주듯 위기에도 끄떡없이 탄탄하게 경제를 운용한 중국은 이제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G2 국가로 부상하였다 미국의 시각을 차가워지고 있다.

하버드대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집필한 '예정된 전쟁'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흥미로운 진단을 내린다. 오래전 신흥패권국인 아테네가 '부상(rise)'하면서 이에 대해 기존패권국인 스파르타가 '두려움(fear)'을 느끼면서 두 국가 간에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생했다는 투키디데스의 분석이 미국과 중국에 대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단어로 정리하였다. 앨리슨 교수는 과거 역사 속에서 기존패권국과 신흥패권국 간의 갈등 사례를 16가지를 발굴하였고 이 중 12가지의 경우는 전쟁으로 이어졌고 4가지 경우는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진단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전쟁이 발발했었지만, 미국과 영국의 패권국 지위 교체의 경우에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보면 기존패권국인 미국과 신흥패권국인 중국 간의 갈등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 단계인 셈이고 이는 두 나라가 소위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핵보유국인 두 국가가 물리적 전쟁을 치르기는 힘들지만, 경제와 통상 전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목해보아야 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현재 백악관에서 무역정책국장의 역할을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정책을 보좌하고 있는 피터 나바로 교수는 2011년 '중국에 의한 죽음'이라는 저서를 집필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다양한 핵심 기술들을 조직적으로 탈취하고 있고 값싼 임금과 환율조작까지 감행하면서 가성비 좋은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여 어마어마한 이득을 챙기고 있다. 5천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무역적자 중에서 60% 수준이 대중 적자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의미 있는 지적이다. 중국은 이렇게 번 돈으로 국력을 키우고 군비를 확장하여 결국 미국을 죽이려 들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중국에 의한 죽음'을 맞이할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인 셈이다. 앨리슨 교수의 시각을 빌리면 기존패권국 미국이 신흥패권국 중국의 '부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사실상 지속하고 있는 브레턴우즈 2.0 체제에서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전 세계가 사용하는 국제결제통화이다. 달러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 중 하나가 석유결제가 99% 이상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석유를 의미하는 페트로(petro)라는 단어에 달러를 더한 '페트로 달러'는 미국의 국력과 달러의 위상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은 상해에 원유선물시장을 개설하고 결제통화를 위안화로 정하였다. 선물거래의 특성상 평소에는 가격의 움직임에 대한 차액결제만 이루어지지만, 선물 만기일에는 실물인 수도가 일어나면서 실물거래가 발생한다. 중국 내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원유결제가 위안화로 이루어지는 시장이 개설된 점은 매우 흥미롭다. 중국은 자국이 세계최대의 원유수입국으로서 중국 기업들이 위안-달러 환율의 움직임으로 인한 환 변동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서 위안화로 결제하는 원유 시장을 개설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원유선물 시장을 개설한 의도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의 성공 여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이는 미국을 대하는 중국의 전략이 앞으로 어떨지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이처럼 미국의 중국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 요소가 더해지면서 불똥은 우리나라로 튀고 있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거대한 규모의 흑자를 내면서 이 돈으로 구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통해 미국을 위협할 것이라는 논리를 전제로 이제 미국은 중국을 손보기 위해 대미흑자를 내는 나라는 나쁜 나라라는 식의 논리를 우리나라에도 적용하고 있다. 우리도 덩달아 손보아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환율조작국 요건도 강화되었다. 중국의 대미흑자 뒤에는 환율조작이 있으므로 이를 광범위하게 통제할 필요가 강해진 셈이다. 대미흑자 연간 200억 불 이상, 경상수지흑자규모 GDP 대비 3% 이상 그리고 환율시장개입규모 GDP 대비 2% 이상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고 이 조건이 다 충족되지 않아도 관찰국으로 지정하여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은 우리나라의 작년도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GDP의 0.6%에 달했다면서 투명하고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외환 시장개입 내역을 신속히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간섭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해외자본의 급격한 유출이 발생하는 경우 곧바로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보유해야 한다. 그리고 외환보유고를 늘이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달러를 사들여야 한다. 만일 한국은행이 환율조작을 한다고 가정하는 경우 한국은행은 달러를 사들이게 된다.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행위는 환율조작 행위와 같은 방향으로 작동한다. 비기축통화국이 위기를 피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상수지흑자를 통해 달러를 충분히 벌어들이고 이러한 흑자의 일부를 중앙은행이 사들여서 외환보유고를 늘여 놓아야 하는데 지금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대미흑자와 환율조작이 문제이므로 외환보유고 확충을 위해 중앙은행이 달러를 매입하는 것도 환율조작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지적을 하는 것이다. 미국이 만든 국제금융 질서 하에서 최대한 생존 노력을 하는 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러한 부분이 큰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측면이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점점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 충돌은 아니어도 경제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취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 계속 발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갈등은 우리의 경제운용과 생존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현명한 접근이 필요하다. 통상 외교 경제 안보 분야에서의 종합적이고 복합네트워크적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아쉬운 시점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前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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