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악력의 원천은 여러 가지다. 우월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군사·외교력은 물론이고, 요즘 눈에 띄는 것은 세계 기축 통화 달러를 기반으로 한 결제시스템의 힘이다. 요즘 진짜 힘은 핵미사일이 아니라 여기에서 나온다는 사례는 즐비하다. 미국 정부와 금융 감독 당국도 이 지렛대를 쥔 손아귀 힘을 더 높이고 있다.
<그림 설명 : IMF의 2017년말 세계 준비 통화 비중. 달러가 파란색, 유로화가 하늘색, 파운드화가 청록색, 엔화가 연두색, 캐나다 달러화가 자주색, 호주 달러화가 보라색, 위안화가 갈색>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세계 준비 통화로써 달러의 비중은 4년 내 가장 낮아졌지만, 여전히 절대 비중은 60%대를 유지한다. 통화별로는 압도적 1등이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유로화가 20%, 엔화와 파운드화가 5% 정도다.
중국 위안화는 캐나다 달러화, 호주 달러화 다음이다. 지난해 3월 중국 당국이 이르면 하반기께 달러 대신 위안화로 원유를 결제할 것이라는 소식을 내놓고, 5월에는 국제 은행 간 위안화 결제시스템을 영업일에 12시간 운영하던 것을 24시간으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따라잡기에는 벽이 너무 높다.
<그림 설명 : 국제 통화들의 위상 비교. 맨 오른쪽 위가 달러다. 가로축은 세계 외환시장 거래량, 세로축은 세계 유동부채 규모. 출처 : IMF>
최근 몇 년 간 미국 감독 당국은 미국에 진출한 해외 은행에 대한 감독 강도를 높였다. '준법감시'라는 큰 틀 속에서 '자금 세탁'과 관련해 지점 내부에 별도 감사 조직 신설과 인력 배치, IT 시스템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어느 때라도 특정 결제에 관한 정보를 바로 제출할 수 있게 하라는 구체적 요구를 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에서 영업 수익이 뻔한 국내 은행의 지점은 막대한 비용 부담이 크다.
해외 은행이 미국 감독 당국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점이 없으면 현지 고객에 대한 접점이 없어질 뿐 아니라 달러 결제시스템에 대한 접근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2014년 세계 해외 거래에 사용되는 통화의 50%가 달러였다. 유로화가 30% 수준이다. 해외 은행이 미국에 없더라도 달러 결제를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달러 결제 시스템과 연결된 다른 금융회사에 수수료를 더 내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간도 더 걸릴 수 있다.
<그림 설명 : 2012~2014년 세계 통화별 사용 비중 추이. 출처 : SWIFT>
미국 달러 결제시스템의 힘은 1조 달러 규모의 미 국채를 보유한 중국에도 통했다. 2017년 9월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중국이 유엔제재를 따르지 않으면 중국이 미국 및 국제 달러화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중국은 태도가 돌변했다. 대북 석유제품 수출을 제한하고, 북한산 섬유제품 금수를 발표한 데 이어 중국 내 북한 기업에 대해 120일 내 폐쇄하라고 통보하는 등 대북 압박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경찰국가 역할을 군사력이나 외교력이 아니라 사실상 달러 결제시스템을 통해 하고 있다. 달러 결제라는 통로를 타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세계가 된 덕분이다. 현재 이 지렛대의 힘에 도전할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올해 초 비트코인 등 암호화 화폐라는 새싹도 심한 견제를 받고, 비틀거린 바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경찰국가가 아니라고 선언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변한 것은 없다. 수단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종혁 특파원)
liber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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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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